베이징 시내를 둘러싼 순환도로 중 하나인 4환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면 삼림공원 아래쪽에 미니 신도시가 나타난다. 지난 27일 개관한 올림픽선수촌인 궈아오춘(國奧村)이다. 각국 선수단 등 1만6000여명이 올림픽 기간에 생활하는 곳이다.

아파트와 훈련장,각종 편의시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궈아오춘의 시설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중국어 학교다. 궈아오춘 내 국제구역 상업가 쪽에 위치한 중국어 학교는 이곳에 입주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중국어를 가르치는 곳이다.

한자의 특성을 알려주고,간단한 회화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외국인에게 중국어 이름을 지어주고 붓으로 써보게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인문(人文)올림픽 표방

궈아오춘의 중국어 학교는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에서 '인문(人文)올림픽'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세운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서방의 이데올로기가 밑바탕을 이룬 지금의 세계질서는 중국의 가치를 매몰시키고 있다"(상하이 국제관계연구소 왕치허 연구원)는 현실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궈아오춘에는 역사전시관,도자기전시관 등 중국의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시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5000년 중국의 역사 속에서 축적된 소위 '소프트 파워'를 과시,중국 고유의 것이 세계 속에서 제 자리를 찾도록 한다는 구상의 단면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9일 "세계는 중국에 16일(올림픽기간)을 줬지만,중국은 세계에 5000년(역사)을 돌려준다"는 말로 이 같은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의 야망은 단순히 문화를 복권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중국 문화의 세계화를 추진 중이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각국 선수단은 알파벳이 아니라 한자 획순을 기준으로 한 국가명에 따라 입장한다. 한자를 세계화한 이벤트다.

궈아오춘 밖에서도 중국 문화 알리기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 남쪽의 첸먼다제는 1년간의 공사 끝에 노면전차가 다니는 청나라 말의 번화가로 복원됐다.

오리구이집 취안쥐더(全聚德),한약방 퉁런탕(同仁堂),최고급 차 판매점인 장이위안(張一元),만두집 거우부리(狗不理) 등 20개가량의 중국 대표 전통상품 브랜드들이 입주했다. 일종의 중국 전통 상업거리가 조성된 셈이다. 뉴욕 증시에 상장한 취안쥐더처럼 중국 고유의 브랜드를 세계화시키겠다는 전략 아래 중국 정부가 입주비 등을 적극 지원했다.

베이징 서우두박물관은 전국 26개 성에서 올라온 국보급 유물을 올림픽기간 내내 전시할 예정이다.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옹정제가 집무실로 사용했던 원명원도 29일 복원공사를 마치고 개장한다. 이 외에도 이화원과 만리장성 등 중국 정부가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수리 복원한 문화재는 139개소,연면적 33만㎡에 이른다.

◆해외에 중국문화 전파

해외에서는 66개국에 설치한 230개의 공자학원이 중국 문화 전파의 전위부대다. 유교와 한자를 가르치는 공자학원은 기본적으로는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와 같은 어학과 문화 학원이다.

그러나 괴테 인스티튜트 등이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달리 공자학원은 현지 대학이나 기구와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탄력적 운용 방식을 채택,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공자학원을 지원하는 교육부 산하 한어(漢語)보급판공실의 왕융리 부주임은 최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약 4000만명에 달하고 미국이나 영국의 학교에서 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하는 학생이 매년 200%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 파워는 중국 문화를 수출하는 것뿐 아니라 외국인을 중국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접경 지역인 윈난성은 주변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에게 연간 수억원대의 장학금을 지원한다. 2003년만 해도 7만여명에 불과했던 중국 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연평균 20%씩 증가,현재 20만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상하이 국제관계연구소 왕 연구원은 "중국이 보다 강력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이 필요하지만 세계에 중국적인 것을 심어주는 '차이나라이제이션(중국화)'도 필요하다"며 "세계를 중국화하는 작업은 바로 소프트 파워를 키워 진정한 강대국이 되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