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다"...자동차 부품업계 '글로벌 시동'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최근 들어 임원회의에서 '모비스 맏형론'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주력 부품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1차,2차,3차로 이어지는 400여개 부품사들의 해외진출을 적극 도우라는 주문이다. 다른 자동차 회사에 납품하지 못하도록 부품사를 철저히 단속하던 기존의 관행을 벗어던지고,협력 부품업체들이 외국 완성차 납품을 위한 해외시장 진출에 눈을 돌리도록 권유하는 이유는 뭘까.

◆현대차-부품사,손잡고 해외 진출

현대.기아차는 올초 인도에 제2공장을 세울 무렵 광진상공,만도,대원강업 등 30여개 부품업체와 함께 인도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부품사들은 첸나이,델리 등에 31개 공장을 세우고 인도의 타타자동차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계약을 맺고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공장이 나가 있는 미국,중국 등에서 공장을 운영중인 대원강업은 인도에도 1만4000여평 규모의 차량용 스프링 공장을 짓고 해외 거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최근 현대.기아차에만 납품하던 부품업체들이 해외시장에 속속 눈을 돌리고 있다"며 "인도뿐 아니라 기아차 공장이 있는 슬로바키아와 체코에도 각각 13개와 3개 부품사가 나가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계열 부품사들도 글로벌 완성차 업계로 수출길을 트고 있다. 자동차 변속기를 생산하는 현대파워텍은 최근 중국 장성자동차와 변속기 수출계약을 맺었다. 개발중인 6단 자동변속기를 크라이슬러에 납품하는 협상도 진행중이다. 현대.기아차의 계열부품사가 자동차의 핵심부품을 다른 회사에 공급한 건 유례가 없다. 성우오토모티브는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에 알루미늄휠 공급을 시작했다.

한 부품업체 고위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부품을 다른 자동차 회사에 공급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며 "그러나 이젠 현대.기아차가 주도적으로 부품사와 해외 동반진출을 꾀하거나 다른 완성차에 대한 부품 공급을 눈감아 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더이상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다"...자동차 부품업계 '글로벌 시동'
◆완성차-부품사,수직계열화 허물어지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완성차와 부품사 간 해외 동반 진출이 한국 자동차 시장의 수직계열화를 허무는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정희식 한국자동차연구소 연구원은 "80~90년대 도요타,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도 부품사와 함께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일본 자동차 부품업계가 단순 하청업체에서 벗어나 몸집을 키우고 원천기술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덴소'같은 세계적 부품사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고유가와 원자재가격 급등에다 잦은 노조파업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 각종 비용부담에 시달리는 완성차 업계의 자구책이란 분석도 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지난해 말 정몽구 회장이 '값싸고 품질 좋은 부품이라면 전 세계 어느 업체와도 거래를 맺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계열 및 협력 부품사만 고집해서는 더이상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라며 "국내 부품업체에 R&D(연구.개발) 비용을 단가에 반영해 지원하는 것도 부품사의 자립을 유도해 궁극적으로 1,2,3,4차로 이어지는 수직적 거래 관행을 깨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완성차-부품사 간 거래 구조가 수평적으로 바뀌는 건 부품업체에도 이득이다. 자동차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국내 부품사들이 현대.기아차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럽,일본 등으로 거래선을 다변화하면 환율 급등락 등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