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바라보는 해외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말 한마디에 증시가 출렁이는가 하면 외교 마찰로까지 치닫고 있는 영국·러시아 합작 석유기업 TNK-BP 사태도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29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증시의 RTS지수는 최근 일주일간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 말 115.41포인트(5.58%) 떨어지며 6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한 데 이어 28일에도 22.55포인트(1.16%) 하락,1928.74로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러시아 증시의 위축에는 글로벌 증시 약세 외에 철강업체 메첼과 관련한 정치권의 개입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푸틴 총리는 지난 23일 메첼이 의도적으로 국내 점결탄(코크스용 석탄) 가격을 수출가보다 두 배 이상 높게 책정,가격을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푸틴의 발언은 곧바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다음 날인 24일 뉴욕 증시에 상장된 메첼 주가는 38% 폭락했다. 하루 만에 6조원의 시가총액이 날아간 것이다.

이에 따라 메첼은 성명을 내고 "철강 제품과 원재료 가격 상승에 대한 정부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투자자들의 불안을 잠재우진 못했다. 파장은 오히려 다른 기업에까지 퍼지며 25일 모스크바 증시에서 러시아 1위 철강회사인 세버스탈은 12% 하락했고,런던 증시에서 러시아 2위 철강업체 에브라즈도 14% 떨어졌다.

러시아 언론들은 과거 정부가 에너지산업을 통제하며 석유기업 유코스를 파산에 이르게 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메첼 사냥'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러시아 정부 대변인은 "메첼과 정부는 어떤 갈등도 없으며 메첼을 유코스와 비교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관료들은 메첼에 대한 당국의 조사가 러시아 철강산업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안드레이 클레파치 러시아 경제개발부 차관은 "앞으로 심각한 결정이 뒤따를지 모르며 철강ㆍ금속 시장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TNK-BP 사태도 러시아 투자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러시아 당국의 비자 갱신 거부로 24일 TNK-BP의 로버트 더들리 최고경영자(CEO)가 러시아를 떠났고,TNK-BP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영국과 러시아 간 외교전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