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은 "유머는 그냥 우스운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여유,인생을 대하는 너그러운 태도까지를 포함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긴박할 때,절망적일 때,그리고 분노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기질,그것이 바로 유머라는 것이다.

유머의 진가에 대해서도 얘기들을 한다. 유머는 금세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대하기 어려운 사람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유머는 오히려 긴박하고,절박하고,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더욱 진가가 발휘되곤 한다. 그래서 유머를 두고 음식의 맛을 내는 양념처럼 일상생활의 양념이라고 하는가 보다.

그런데 유머를 자유롭게 말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우선 마음가짐이 여유롭고 즐거워야 한다. 또 자신을 관망하는 깊은 성찰이 깃들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 내키는대로 하는 말은 한갓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기발하면서도 은근하고,오래오래 여운이 남는 운치있는 유머를 누구나 말하고 싶어한다.

생활 속에서 유머의 필요성은 종종 느끼지만,처음 여자친구를 만날 때는 더욱 절실하다. 위트있는 한마디로 상대의 호감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유머가 적당할까. '자학유머'가 상대 여성에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뉴멕시코대학 심리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인 그린그로스는 2년간에 걸친 실험연구에서 자기 비하 유머가 여성에게 가장 어필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자학유머는 우리에겐 낯설지 않다. 개그프로에서 수없이 보고 있어서다. 살짝 망가지면서 자신을 낮춰 웃음을 유발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외모 또는 목소리를 희화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보다 개성있는 사람에게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심리가 있어 그 사람의 유머가 더욱 살갑게 다가오는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일 게다.

유의할 점은 자칫 자학유머가 냉소적으로 흐르거나 자기 결점을 지나치게 부각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사실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