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공사(KIC)가 올해 1월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투자한 20억달러(약 2조원)어치의 의무전환 우선주를 보통주로 조기 전환했다. 전환가격을 주당 52.4달러에서 27.5달러로 유리하게 낮춘 대신 향후 약 2년간 받는 연 9%의 확정 배당을 포기하는 조건이다.

KIC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메릴린치와 재협상을 통해 이처럼 투자 조건 변경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KIC는 이에 따라 메릴린치 보통주 약 7224만주를 받는다. 메릴린치가 진행 중인 85억~1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증자를 감안하면 4.5~5%에 해당하는 지분으로 KIC는 싱가포르 투자기관인 테마섹에 이어 2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KIC는 이번 투자 조건 변경에 대해 "그동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메릴린치의 주가 폭락으로 7억8500만달러가량의 평가손을 냈지만 이번에 전환가격이 낮아지면서 평가손이 거의 사라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KIC가 전환가격을 낮춘 대신 연 9%의 확정 배당을 포기한 데다 향후 메릴린치 주가가 하락할 경우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메릴린치 주가는 추가 상각 우려 등으로 11.59% 내린 24.33달러에 마감했다. 전환가격 하향 조정 뒤에도 또다시 2억달러(2000억원) 넘는 평가손실을 입은 것이다.

한편 메릴린치는 신주발행 방식으로 테마섹 등으로부터 85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으며, 부채담보부증권(CDO) 매각에 따른 손실로 3분기에 57억달러의 자산을 추가 상각할 계획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