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영, "역도는 힘이 들어가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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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배영(29, 경북개발공사)은 4년 전 아테네올림픽 역도경기에서 '동급 최강' 장궈정(34, 중국)의 기록 347.5kg에 5kg이 모자라는 342.5kg으로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다.
시상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환한 웃음을 보인 그였지만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으로 아테네에서 못 이룬 한을 베이징에서는 꼭 풀어야겠다는 독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4년 뒤 같은 무대에 재도전하는 그에게는 금메달에 대한 조바심보다는 그것을 뛰어 넘은 '해탈'의 기운이 풍겼다.
남자역도 69kg급 국내 최강자 이배영. 그가 생각하는 최대의 라이벌은 중국의 장궈정과 스즈융(28)이지만 지난 27일 중국은 '베테랑' 장궈정을 제외한 채 올림픽 출전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라이벌의 불참으로 자신감이 생길 법 했다.
그러나 정작 이배영은 "8월7일 감독자회의에서 출전 선수 교체가 가능하다고 한다. 장궈정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잘 해야 한다. 당일 경기까지 마음을 놔선 안 된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베이징올림픽 출전에 대해 그는 "아테네에서 은메달에 그쳐 마음 속 깊숙하게 금메달에 대한 욕심이 자리잡고 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라면 누구나 금메달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너무 금메달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되고 내 자신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기를 하겠다"고 답했다.
이배영이 내놓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기'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우리나라는 금메달에만 너무 많은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하지만 나는 금메달에 포커스를 두지 않겠다"며 "경기는 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목표의식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올림픽 전에 감독님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밝힌 이배영은 "나는 기록과 상대 선수에 신경 쓰지 않을 테니 감독님이 작전대로 해주면 나는 그것에만 따르겠다"며 "상대를 신경쓰다 보면 의지는 넘치는데 몸 상태가 따라주지 못할 수도 있고 판단력이 흐려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배영은 "역도라는 말에는 '길 도(道)'자가 들어간다. 즉, 역도(力道)는 힘이 들어가는 수행"이라며 "힘뿐만 아니라 성품까지 가다듬는 운동이 역도"라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이미 운동선수를 뛰어 넘어 '도인'의 품새를 엿보인 이배영은 한국의 '1등주의'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도 여지없이 풀어냈다.
"우리나라의 1등주의가 아쉽다"고 운을 뗀 이배영은 "300명이 넘는 선수들이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는데 그 선수들 모두가 메달을 따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메달 유망주에만 관심을 갖는데 지금은 못하더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더 잘 할 수 있는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민들에게 역도가 서서히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그는 "이 관심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꼭 1등이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져주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응원을 열심히 해주면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함께 자리한 77kg급의 김광훈(26, 상무)을 가리킨 이배영은 "(김)광훈이는 아테네에서 마지막 시기를 실패하는 바람에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다. (사)재혁(23, 강원도청)이와 같은 체급에 기록도 비슷해 한 두 시기 차이로 성적이 결정될 텐데 노장은 무시 못하는 법"이라며 큰 대회를 앞둔 후배의 사기도 한껏 살려주는 모습도 보여줬다.
실제로 김광훈과 사재혁은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을 노리고 있는 대표선수들이지만 그 동안 비인기종목의 선수여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인터뷰 말미에 이배영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역도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 설명했다.
"인터넷에 역도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 위한 공간을 마련해 현재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실제로 역도를 하는 중학생 후배 가운데 역도화도 없이 훈련하는 후배들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는 훈련시스템은 되어있어도 물품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무거운 무게를 들어올려야 하는 역도선수에게 역도화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장비라고 설명한 이배영은 "그래서 후진을 양성한다는 생각으로 역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올림픽을 앞둔 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유와 함께 밝은 표정을 보여줬던 이배영은 오는 8월12일 금빛 바벨을 힘차게 들어올린다.
오해원기자 ohwwh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