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서비스 산업화의 시험대가 될 제주특별자치도 내 국내 영리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이 도민의 반대로 지난 28일 무산됐다. 이에 따라 현 정부가 제주도에서 영리병원을 시범적으로 운영해본 후 부작용을 보완,경제자유구역 등으로 확대하려던 의료산업화 전략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영리병원 허용 여부는 민간의료보험 도입,요양기관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해제,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한 해외환자 유치활동 허용,병원 간 인수ㆍ합병 허용,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병행 규제 완화 등 시장경제를 의료에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정책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영리병원 왜 필요한가=전두환 정권부터 시작된 국민의료보험 제도는 1989년 전 국민으로 확대 실시돼 대다수 국민이 미국 민간의료보험의 10분의 1에 못 미치는 비용으로 의료혜택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3시간 대기,3분 진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이 있어도 차별화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제적 여유층은 상대적으로 불만이 높았다.

영리병원 허용은 한마디로 '주식회사 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즉 의사나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비영리법인 등만이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을 고쳐 주주들이 자본을 모아 만든 병원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영리병원은 박인출 대한네트워크병의원협회장(예치과 원장),안건영 고운세상피부과네트워크 원장 등 사업적으로 성공한 의사와 시장의료를 옹호하는 보건학자들에 의해 논의가 제기됐다. 이들은 공공성이 지나치게 강조돼 온 기존 의료체계에 자본주의 시장경쟁 원리를 불어넣어야 국민에게 보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인적자원이 발전동력의 근간인 한국에서 최고급 두뇌들이 의대에 진학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싱가포르 태국의 의료관광 성공사례를 국내에서도 재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즉 영리병원 허용을 통해 서비스를 고급화하면 지난해 665억원(보건복지가족부 추산)에 달하는 의료서비스 국제수지 적자를 만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도체 조선 등을 잇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의료서비스 산업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관료들도 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만큼 의료산업을 활성화하면 고용창출 등으로 GDP(국내총생산) 1%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며 이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여기에 기존 보험시장의 포화와 외국계 보험사의 국내진출로 성장성이 정체된 보험업계도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해 영리병원 도입을 반기고 있다.

안건영 원장은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고서는 다른 의료법 조항을 개정하거나 의료 관련 규제를 아무리 완화한다 해도 의료산업으로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왜 반대하나=미국 영화 '식코'에서 목수 릭은 목재 절단기에 왼손 중지와 약지가 잘린다. 그러나 중지를 봉합하는 데 6만달러,약지는 1만2000달러의 비용이 든다.

고심 끝에 그는 약지를 택한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이 영화는 '앞으로 가난한 사람은 병원도 못 가고 죽는다'는 의료민영화 괴담을 만들었다. 결국 현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맞물려 건강보험의 민간개입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의 영리병원은 자국에서 그저 '중저가' 병원에 불과하다"며 "영리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사망률이 2% 더 높다는 연구보고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리병원이 도입돼 '상냥하고 친절한' 인력이 의료서비스에 더 많이 투입되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높은 비용을 환자들에게 청구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점진적인 요양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및 민간의료보험 확산으로 이어져 공적 건강보험제도가 붕괴되고 의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암초에 부딪힌 의료서비스 산업화 정책=이명박 정부는 지난 17대 국회에서 논의됐다 폐기된 외국인 환자 유치 활동 허용,의료법인 간 인수ㆍ합병 절차 마련 등 시장의료를 촉진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영리법인 허용에 대해 한 번도 '추진' 방침을 표명하지 않은 채 '장기 검토 과제'로 고려 중이라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김강립 복지부 보건정책과장은 제주도 국내영리병원 무산과 관련,"제주도란 특정지역에서의 시범실시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방식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이번 결과를 의료산업화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미비점을 보완해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공적 건강보험이 엄연히 존재하고 대부분의 개인병원이 사실상 영리법인이고,대형병원은 학교법인 의료법인 공익법인에 속해 적정이윤을 취하는 현 체제에서 영리병원을 국한적으로 시범 실시하는 것조차 문제 삼으면 의료 발전을 위해 아무것도 할 게 없다"며 "경제발전 등 영리병원의 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단점만을 부풀려 무조건 반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