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를 타고 法性의 바다로 곧장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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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파도소리가 들리십니까? 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파도소리를 타고 곧장 바다로 들어가십시오."
전남 고흥군 금산면의 거금도 바닷가에서 금천선원을 운영하는 일선 스님(47)은 수련회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파도소리 관(觀)하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여기서 말하는 파도소리와 바다는 그냥 바다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바다,귀에 들리는 파도소리가 아니라 그 바다와 소리를 보고 들을 줄 아는 자기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법성(法性)의 바다요,원효대사가 말한 일심의 바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열네 살에 출가해 고등학교를 마친 뒤부터 봉암사 등의 선방을 다녔던 일선 스님이 거금도로 들어간 것은 1997년.송광사 말사이자 보조국사가 창건한 송광암 암주(주지)로 2005년까지 일했고,5년 전에는 수련 전문도량인 금천선원을 창건해 운영하고 있다. 송광사에서 10년 이상 수련회 상임지도법사를 맡아 겨울에는 안거에 들고 여름이면 수련생들을 지도했던 경험을 살려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사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처음 섬에 왔을 땐 외롭고 낯설었지만 이젠 이 섬과 인연을 맺게 된 뜻을 알겠어요. 정진하라는 것이지요. 선원에서는 태풍이 잦은 여름을 피해 겨울수련회와 주말 단체수련회를 하고 있는데 비바람 때문에 사람이 없을 땐 혼자 경을 읽거나 참선을 하면서 공부하지요. "
일선 스님은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에서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수많은 강물,냇물이 모였어도 서로 다투지 않고 한 맛을 내는 바다는 일체 시비의 분별을 끊은 곳일 뿐만 아니라 깊은 밤에도 잠들지 않고 출렁이며 자기를 정화하는 정진력을 갖고 있다는 것.쉼 없는 작용으로 모난 돌을 둥근 조약돌로 만드는 파도로부터는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정진의 끈을 놓치 말라는 가르침을 배운다.
"인생이라는 고해에서 큰 파도가 휘몰아칠 때에는 스스로 난을 피하는 안전한 섬이 돼야 합니다. 밑바닥 없는 배를 타고 저 파도소리를 따라 곧장 들어가 보세요. 모든 생각의 흐름이 끊어져 일념이 되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없고 다만 들을 줄 아는 성품만 나타나는데 그곳이 바로 안전한 섬입니다. "
바다와 파도소리를 도반으로 삼아온 일선 스님은 이런 메시지를 수행 에세이집 <소리>(클리어마인드)에 담아냈다. 그는 이 책에서 "마음이 부처라고 분명하게 믿고 깨달으면 사람마다 부처이므로 생각이나 수행방편,하는 일이 다르다고 다툴 일이 없을 것"이라며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를 배우라"고 강조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