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모를 불황 … 산업계 '생존형 동맹' 확산

삼성석유화학 삼남석유화학 케이피케미칼 등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생산업체들은 최근 실무진 모임을 만들었다. 정유 회사들이 PTA 원재료인 파라자일렌(PX) 가격을 대폭 인상하자 공동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넥센타이어 등도 국내 5대 완성차 업체에 공동으로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타이어 원료인 국제 천연고무 가격이 급상승하자 자동차 생산업체들을 상대로 단체 행동에 나선 것.

◆뭉치면 산다…'적과의 동침'도 확산

국내 산업계에 '생존형 동맹'이 확산되고 있다. 고유가,환율 급변,원자재값 상승 등의 대내외적 환경 악화와 끝 모를 불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비용 절감을 위한 '적과의 동침'은 물론,제품 공급가를 높이거나 다른 기업의 신규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동종업계간의 '단체행동'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황 속에서 신규 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한 진입장벽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주유소업계가 단적인 예다. 신세계 이마트가 최근 SK네트웍스와 손잡고 올해 안에 주유소 사업에 본격 진출한다고 선언하자,주유소업계는 불매운동까지 추진하는 등 반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LG화학 삼성토탈 롯데대산유화 등 화학 3사는 내달부터 삼성토탈의 대산 프로필렌 생산공장(OCU)이 완공되는 대로 기초유분,부텐,프로필렌 등의 원료를 상호 교환,사용키로 합의했다.

삼성토탈이 인근의 롯데대산유화,LG화학으로부터 C4유분(부탄가스)을 받아 OCU에서 프로필렌을 생산한 뒤 이를 다시 양 회사에 공급하는 식이다.

에쓰오일도 최근 현대오일뱅크의 강원도 동해 저유소(저장탱크)를 공동 사용키로 계약했다. 저유소 신설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신규 확보가 여의치 않자 현대오일뱅크에 'SOS'를 친 것이다.

전자업계에서도 삼성전자LG전자가 그동안 업계의 숙원 사업이었던 패널을 교차 구매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교차 구매가 이뤄지면 삼성전자가 37인치 모듈을 LG디스플레이에서 구매하고 LG전자는 52인치 모듈을 삼성전자로부터 살 수 있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뭉쳤다"
◆'자발적 딜'도 급증

기업 간 자율 구조조정을 위한 '딜'도 시작됐다. 경쟁력 강화 차원이 아닌,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협력이다. 과거 정부 주도로 추진된 '빅딜'과는 달리,기업 간 자율적 구조조정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게 특징이다.

SKC와 ㈜코오롱은 지난 4월 양사의 PI 필름 사업부를 분사해 세계 3위 규모의 PI(폴리이미드)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세계 시장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를 뽑아든 것이다. 지난달 LG화학이 ㈜코오롱의 고흡수성수지(SAP) 사업부문을 인수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유화업계 관계자는 "경쟁력 약화로 설비 폐쇄와 같은 극단적 상황을 맞기보다는,기업 간 자율 조정으로 미리 위기를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이뤄진 조치"라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외환위기를 전후로 기업들 사이에서 '불황 카르텔'이 나타났던 것처럼,최근엔 생존을 위한 각종 형태의 동맹이 확산되고 있다"며 "그만큼 기업들의 상황이 어렵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장창민/손성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