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난처한 지경에 처했다. 플로피디스켓의 자료와 사진을 컴퓨터에서 재생,이메일로 보내려 했으나 재생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무실 노트북과 데스크톱 어디에도 플로피디스켓을 사용할 수 있는 A드라이브가 없었다. CD와 USB에 자리를 빼앗긴 플로피디스켓의 현실이다.

신제품 등장으로 무용지물이 된 건 이 밖에도 많다. 필름카메라도 그렇고 공중전화 카드도 비슷하다. 백과사전 또한 인터넷 검색 일반화로 자리만 차지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서랍 속엔 버리기 아까워 놔둔 삐삐가 굴러다닌다. 애써 모은 LP판과 비디오테이프의 처지 역시 다르지 않다.

카세트테이프도 마찬가지다. 노래는 물론 영어ㆍ일어 테이프까지 적지 않은데 들을 길이 없다. 집안 오디오 기기는 물론 자동차에도 CD플레이어만 장착돼 있는 까닭이다. 2년 전 한 시중은행에서 받은 행가(行歌) 테이프를 틀어볼 수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CD였으면 좋았을 걸 노래는 무조건 카세트테이프에 담는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도 그랬을 것이 나이든 세대에게 카세트테이프는 오디오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소니의 '워크맨'은 어학공부의 필수품이었고,전축을 대신한 라디오 겸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는 노래도 듣고 녹음도 하는 가정용 오락기구였다. 휴대용 플레이어는 야유회에도 없으면 안되는 품목이었다.

영화 '박하사탕' 첫장면에서처럼 어디든 들고 가서 테이프만 넣으면 나오는 음악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고 체조도 했던 것이다. 오디오북도 많아서 동화 전집엔 으레 카세트테이프가 딸려있었다. 그러던 카세트테이프가 미국에서도 CD와 MP3에 밀려 영구 퇴출될 운명에 처했다는 소식이다.

2006년 카세트테이프로 판매된 오디오북은 7%,지난해 팔린 카세트테이프 음반은 전체 앨범의 0.1%에 불과하고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내장된 자동차는 4%뿐이었다는 것이다. 세기의 발명품도,세상이 놀란 대박상품도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과학과 기술 변화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