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항 <건양대 보건복지대학원장>

지난 주말 촛불시위 중 전경 두 명이 시위대에 30분간 억류됐다 풀려났다. 웃옷이 벗겨지고 맨발인 채 풀려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참담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필자뿐이었을까. 언론은 '시위대에 발가벗겨진 경찰'이라고 적고 있으나 나는 '시위대에 발가벗겨진 국민'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전경들은 옷이 벗겨지고 매를 맞는 순간 '수치심과 함께 모멸감이 들었다'고 한다. 이는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느끼는 수치심과 모멸감이다.

이들을 폭행한 사람들은 누구이기에 이렇게까지 국민을 욕 보일 수 있는가. 동생과 같은 전경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서 문제가 해결되는가. 일제 식민지 시절의 '순사'라고 생각하고 화풀이를 했는가. 집회를 주동한 그 누구도 이번 사태에 대해 유감이나 사과의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당당한 것 같아 보인다.

경찰은 사회질서를 바로 잡기 위한 공권력을 집행하는 국민의 대리인이다. 시위대가 탈선하지 않도록,차량이나 시민의 통행에 불편함이 없도록,시위현장의 주민이나 상점에 위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그런데 시위대는 전경들이 시위를 막는다고 감금하고 때리고,그리고 발가벗겨 모욕했다. 이는 바로 국민을 향한 도전이다.

서울시 경찰청장은 '폭력시위로 경찰 수백 명이 다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선진국 국민은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권한을 경찰에 위임했기 때문에 그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들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해 사회가 혼란해지면 그 피해는 결국 모든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경찰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동은 엄하게 다뤄야 한다는 합의가 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경찰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법규위반을 단속하는 경찰관에게 삿대질 멱살잡이가 일쑤다. 술 마시고 파출소(치안센터)에서 행패부리는 장면도 TV에서 보았다. 정부도 이러한 풍조에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말로는 법과 원칙을 지킨다고 하면서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다. 이번에도 촛불시위에 놀라 불법시위를 주동하는 사람들을 적당히 눈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공권력은 원래 물렁한 것,아무리 조롱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굳어진 듯하다.

반면에 시위꾼들은 정부를,아니 국민을 얼마든지 굴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는 것 같다. 이제는 이명박 정부는 하고 싶은 일을 시위를 겁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촛불시위 현장에는 쇠고기 이슈와 관련 없는 피켓이 보이고 심지어는 정권 퇴진 구호까지 보인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보면 절망을 느낀다. 지난 60여 년간 쌓아온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다. 일제 치하를 벗어나 참혹한 6.25전쟁을 겪으면서 잿더미 가운데 이 나라를 일궈왔다. 이제 모처럼 좀 살 만하다고 느낄 터에 이러고도 잘 지탱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이것이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데 치러야 하는 홍역이겠거니 하고 애써 위안하기엔 사태가 너무 심각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국가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미 시위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자신감을 가진 이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말없이 침묵하고 있는 훨씬 더 많은 국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

촛불을 켜들고 대로를 점령하고 큰소리 치는 사람들만이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당나귀를 팔러 시장에 가는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번갈아 타고 가면 된다. 동네 사람들의 말에 흔들려 당나귀를 강물에 빠뜨리는 우(愚)를 범해선 안된다는 이솝 이야기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