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요리가 여름에는 맞지 않는다고요? 천만에요. "

서울 남대문로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에서 만난 이탈리아 요리사 아니타 비디니 조리장(52)은 한국의 무더운 여름 날씨에 이탈리아 요리는 안 어울리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국내 특급호텔에서 가장 오래된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 폰테'(1987년 개점)의 조리장을 4년째 맡고 있다. "이탈리아도 한국처럼 사계절이 있어요. 때문에 여름에 먹는 차가운 요리도 따로 있습니다.

설마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땀을 흘리며 뜨거운 파스타를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선뜻 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비디니 조리장은 준비한 요리들을 내놓으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①전채요리: 차가운 토마토 소스를 드레싱해 입맛 돋워

비디니 조리장이 먼저 내놓은 요리는 차가운 '토마토 드레싱에 왕새우 타르타르를 곁들인 라비올리 요리'.왕새우 타르타르는 잘게 다진 왕새우 살을 올리브오일,레몬 주스,후추,다진 양파와 함께 3시간 동안 재웠다. 라비올리는 밀가루를 반죽해 네모나 반달 모양으로 익힌 것으로,'이탈리아식 만두'라 할 수 있다. 그는 "이탈리아 요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토마토를 이용한 요리"라며 "차가운 토마토 소스를 드레싱한 것이 혀를 가볍게 자극해 입맛을 돋운다"고 설명했다.

②가스파초 수프: 지중해의 건강보양식

스페인 요리로 알려진 가스파초 수프는 지중해 주변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여름철 냉장고에 보관하고 주스나 물처럼 마시는 건강보양식이라고 한다. 비디니 조리장은 "이탈리아의 여름도 한국 못지 않고 남부 시실리는 최고 42도까지 올라가는데 가스파초는 지중해의 열기를 식히는 데 없어선 안 될 요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파,오이,마늘,토마토,고추,후추 등을 넣고 하룻동안 재운 수프를 빨간 파프리카에 담았다. 파프리카는 수프를 보다 매콤하게 만들다. 으깬 얼음을 깔아 시원함을 유지한다.

③냉(冷)파스타: 이탈리아의 '쟁반냉면'

이어 등장한 요리는 이탈리아 요리의 대표격인 파스타로,'게살로 장식한 야채 냉카펠리니'.게살과 야채를 냉파스타와 곁들여 먹는 음식인데 한국의 쟁반냉면과 비슷하다. 카펠리니는 굵기가 가는 면을 올리브오일과 섞어 식힌 다음 아스파라거스,브로콜리,올리브,양배추,마늘 등을 넣어 만든다. 그 위에 올리브오일과 백리향 잎,후추와 함께 재운 게살을 올린다. 그는 "올리브오일과 게살이 어울려 맛이 담백하고 고소하며 전혀 맵지 않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④메인요리: 이탈리아 가정에서 즐겨 먹는 돼지고기 요리

메인요리로는 '펜넬과 아티초크를 곁들인 돼지고기 요리'를 내놓은 비디니 조리장은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여름 보양식"이라며 "여름철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고루 갖췄다"고 강조했다.

그는 돼지고기에 작은 구멍을 내고 안에 로즈마리와 마늘,후추를 넣은 후 40분(500g 기준) 정도 오븐에 익혔다. 로즈마리와 마늘은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를 없애주는 역할도 한다. 다 익은 뒤 얇게 자르면 고기 한 점마다 마늘과 로즈마리가 들어가 있어 식혀서 먹을 때에도 풍부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소스는 사과 망고 백리향 고추 올리브오일 머스타드 등과 돼지고기 육즙을 섞어 만들었고,허브의 일종인 펜넬과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는 아티초크(엉겅퀴와 비슷)로 장식했다. 그는 "사과는 돼지고기와 맛이 어울려 널리 쓰인다"며 "망고는 한국에 와서 처음 맛본 과일인데 부드럽고 달콤한 향이 돼지고기와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⑤디저트: 레몬 아이스크림 셔벗

끝으로 내놓은 디저트는 비디니 조리장이 '가장 사랑하는 셔벗'이라고 소개한 레몬 아이스크림 셔벗.스파클링 와인,보드카,레몬아이스크림을 넣어 섞은 뒤 커피가루를 띄웠다. 그는 "고소한 커피향이 레몬과 잘 어울리고 스파클링 와인과 보드카가 몸의 활기를 불어넣는다"고 자랑했다.

이어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도 추천했다. 파스타에는 코르데로 디 몬테체몰로사(社)의 '엘리오르 샤르도네 2005'를 권했다. 샤르도네로 만든 화이트 와인으로,꽃향의 아로마가 게살과 야채로 버무려진 파스타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 메인요리에는 같은 와이너리의 '돌체토 달바 2006'을 꼽았다. 과일향이 돋보이는 레드와인인데 과일과 야채가 들어간 돼지고기 요리의 풍미를 더해 줄 것이란 설명이다.

2005년 한국에 온 비디니 조리장에게 한국인의 인상을 물었더니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람들"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유를 물었더니 의외의 답을 했다. "맙소사! 밖에 눈이 내리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스크림을 사먹더라고요. 이탈리아에선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풍경입니다. 최소한 이탈리아인들보다 열정이 넘치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웃음)."

글=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사진=양윤모 기자 yoonm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