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4년 10월15일,로마에서였다. 카피톨리누스 언덕 위의 폐허에 앉아서 탁발 수도사들이 유피테르에서 저녁 기도를 올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중 처음으로 이 도시의 쇠망사를 집필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
에드워드 기번의 영원한 고전 <<로마제국 쇠망사>>가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번이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9년 뒤였고 첫 권 출간까지는 또 3년이 더 걸렸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서기 2세기부터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동로마 제국이 몰락한 15세기까지 1400여 년의 세월을 꿰뚫고 있다. 그리스도교 확립과 게르만 민족의 이동,이슬람의 침략,몽골족의 서정(西征),십자군 원정 등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르며 고대와 근세의 교량 역할까지 해 준다.
두툼한 분량으로 여섯 권이나 되는 이 책의 의미는 크고 깊다. '영문학사의 고전 명작''12년에 걸친 필생의 역작' 등의 수사를 넘어 세계적인 인물들에게 영감을 준 '지혜의 원천'이었다. 수많은 로마사 관련서를 파생시킨 모태이기도 하다.
기번의 문체는 매끄러우면서도 촘촘하고,생생하면서도 객관적이어서 '아주 특별한 연구 대상'으로 꼽힌다. 실제로 그의 집필 방식은 독특했다. '긴 단락을 하나의 문장에 넣어 귀로 음미해 보고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가 마지막 손질을 하고 나서 펜을 움직이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소리 내어 읽지 않더라도 낭랑한 음률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는 영국인이면서 키케로를 프랑스어로 번역해 놨다가 이를 다시 라틴어로 옮긴 뒤 그 결과를 원문과 대조하는 외국어 학습광이었다. 그리스어와 스페인어,히브리어까지 능통했다. 이 같은 언어 능력 덕분에 다른 사람의 연구 성과가 아닌 원사료를 직접 읽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역사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들을 능숙하게 활용했다.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그 외 연관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책의 곳곳에 절묘하게 풀어 냈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기번은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들을 균형 감각을 잘 갖추어 가며 볼 수 있게 해 준다. 여기서는 압축하고 저기서는 확장한다. 그는 가장 많은 자원을 가진 엔터테이너이다"라고 극찬한 이유를 알 만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