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점유율 1위 제품을 생산 중인 A 기업은 지난 3월 이후 환율이 급등하자 은행 3곳과 맺은 키코(KIKO) 계약에 따라 수백억원의 환차손을 입었다. 결제 대금이 매출액과 맞먹을 정도로 커져 납입 기일까지 정산하지 못했다.

이처럼 올 상반기 기업들이 키코로 인해 입은 피해가 1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30일 집계됐다. 특히 여러 은행과 수출액을 훌쩍 뛰어넘는 투기적인 계약을 맺었던 71개 기업은 무려 5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날렸다.

◆519개 업체 키코 거래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키코 거래업체는 519개사,계약 잔액은 101억달러(은행에 팔아야 할 콜옵션 금액 기준)이다. 이 중 중소기업이 480개사,거래규모 75억달러(74.3%)를 차지한다.

이 기업들은 올 3월 말부터 원·달러 환율이 100원 이상 급등하자 6월 말 기준(환율 1046원)으로 5103억원의 환차손을 봤다. 또 향후 이 같은 환율이 유지될 경우 계약 종료시까지 9678억원의 환차손을 입게 된다. 모두 1조4781억원의 피해를 입게 된 것.키코는 환율이 상단을 넘어서면 계약금액의 2~3배를 시장가보다 낮은 지정환율로 팔아야 돼 기업이 손실을 입게 된다.

특히 키코를 투기 수단으로 쓴 71개 기업은 4967억원(실현손실 1691억원,평가손실 3276억원)의 피해를 봤다. 이 중 중소기업이 68개다. 이들은 수출액의 2배(193.8%)가량에 달하는 키코 계약을 맺었다.

금감원은 이 기업들이 환율이 오른 만큼 수출대금에서 3조6731억원의 환차익을 올렸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면 2조1950억원의 평가이익을 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자재 수입 가격도 똑같은 비율로 올라 환차익은 거의 없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특히 오버헤지한 중소기업은 환차익을 감안해도 2533억원의 평가손실을 입고 있다. 이들 상당수가 키코 대금을 결제하지 못해 은행들이 대신 갚아준 뒤 미수금 등으로 처리하거나 대출로 전환해 주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환율이 조금씩 떨어져 피해액이 줄고 있다. 지난달 28일 환율이 1006원인 점을 감안하면 평가손실은 9678억원에서 5638억원으로 4000억원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당국,뒤늦은 대책

키코 피해가 커지자 금감원은 은행의 불완전 판매가 있었는지 이달 중순부터 현장 점검을 할 계획이다. 또 파생상품 설명자료를 개선해 위험 고지를 강화하는 한편 기업이 여러 은행과 거래하며 '오버헤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파생상품 정보집중 및 공유시스템'을 오는 11월 가동한다. 기업피해 사례 접수 및 처리 등을 위한 대책반도 운영한다.

주재성 금감원 은행업서비스본부장은 "환율이 일정 수준으로 안정되는 시점에서 기업과 은행이 협의해 조기 정산하는 방안을 강구토록 유도하겠다"며 "일시적으로 유동성 악화가 우려되는 중소기업에 대해선 은행들이 대출 전환 등 지원 방안을 세우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