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을 들며 백거이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번쩍하듯 찰나에 사는 몸

풍족하나 부족하나 그대로 즐겁거늘

하하 크게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對酒(二)

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寄此身. 隨富隨貧且歡樂, 不開口笑是癡人.


통찰의 힘은 긍정에서 나온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걱정으로 마음이 졸아들 때 이 시를 읊으며 용기를 냈다고 한다. 눈앞의 작은 분쟁을 경계하고 호방하게 큰일을 도모하는 지침으로 삼기도 했다.

≪장자(莊子)≫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전국시대 위나라의 혜왕은 불가침 조약을 맺었던 제나라 위왕이 약속을 깨자 자객을 보내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재상인 혜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혜자는 도가의 현인인 대진인(戴晉人)을 만나보라고 권했다.

혜왕을 알현한 대진인이 '달팽이의 왼쪽 촉수에는 촉(觸)씨 나라가 있었고 오른쪽 뿔에는 만(蠻)씨 나라가 있었는데 사소한 영토분쟁으로 전쟁을 일으켜 수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달팽이의 우화를 들려줬다. 혜왕이 엉터리 이야기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는 끝이 없습니다. 끝없는 우주에서 우리 지상을 내려다보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위나라와 제나라의 분쟁 역시 달팽이 두 촉수의 분쟁과 다름이 없지 않겠습니까?"

당대에 위업을 이루고 간 정주영 회장의 통찰력도 여기에서 나왔다. 그는 뭐든지 가능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부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면 "해 봤어?"라는 한 마디로 '부정의 싹'을 잘라버렸다.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부산의 유엔군 묘지를 방문하기 직전,미군 측이 "황량한 묘지를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자 그는 낙동강변의 보리싹을 수십 트럭 싣고 와 묘지를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런 것들이 다 긍정의 뿌리에서 나온 통찰의 힘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