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프랑스도 고강도 개혁을 추진할 수 없었죠."

필립 티에보 주한 프랑스 대사(55)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취임 1년여 동안 55개의 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며 "국민들이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는 내용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선출된 정치적 정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합동의 프랑스 대사관에서 만난 티에보 대사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의 개혁정책에 관한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프랑스는 현재 개헌을 비롯해 정치 경제 국방 사법 등의 분야에서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 중이다.

티에보 대사는 특히 경제 분야 개혁에 대해 "국가경제 현대화를 위해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대책들을 내놓았다"며 "국민들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유통업계가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안도 강구했다"고 강조했다. 경직됐던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급선무였다. 티에보 대사는 "주당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며 "현행 35시간인 주당 근로시간을 노사 합의에 따라 최대 48시간까지 늘릴 수 있게 바꿨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재정 적자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적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사회보장제도도 손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연금제도는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고 일부 제도를 축소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티에보 대사는 "국민들이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려면 개혁이 시급하다고 인식하도록 한 덕분에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티에보 대사는 "프랑스는 올해 말까지 6개월간 EU의 순회 의장국을 맡는다"며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EU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정책들을 편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프랑스는 하반기 우선 과제로 △기후변화 △이민정책 △농업 공동정책 등을 내걸었다.

EU 의장국으로서 프랑스는 오는 10월25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ㆍ유럽정상회의(ASEM) 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티에보 대사는 "ASEM 기간 중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 간 한ㆍEU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며 "한국과 유럽이 교류를 더 확대할 수 있는 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는 10월 한국에 부임한 지 만 3년이 되는 티에보 대사는 "한국전쟁 후 50여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에 경외심과 호기심을 갖고 있다"며 "한국의 역동적 발전에서 배울 것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한 30년 전은 통행금지도 있던 시절"이라며 "당시와 몰라보게 달라진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인상적"이라고 말하는 티에보 대사의 모습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파리정치학교(IEP)와 국립행정대학원(ENA)을 나온 티에보 대사는 한국에 오기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집행이사회의 프랑스 대표 등을 지냈다.

글=서기열/사진=김병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