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분업체들이 밀가루 가격을 내리면서 서민 생활과 직결된 라면,과자,빵 같은 가공식품과 자장면 칼국수 등 외식 가격도 내릴지 주목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5.9%)을 기록하는 등 물가 불안이 가중되면서 정부와 소비자단체들의 가격 인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업계에선 밀가루 가격 인하폭이 당장 제품가격을 내릴 만큼 크지는 않지만 내부적으로 가격 인하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가격 인하 압박 거세져

동아제분 CJ제일제당 등 제분업체들은 밀가루 출고가격을 지난달 하순 8~13% 일제히 내렸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국제 원맥(밀) 시세를 반영하면 오는 10월 수입분부터 가격을 내릴 수 있지만 고통 분담 차원에서 가격 인하 시기를 두 달여 앞당겼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반기 '밀가루값이 올라 제품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해온 식품업체들은 거꾸로 '왜 가격을 안 내리느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는 라면 등 주요 생필품의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하고 있고,소비자단체들은 식품업체들이 원가 상승을 핑계 삼아 제품가격을 과도하게 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밀가루 가격 인상을 제품가에 전가했던 식품업체들은 밀가루 가격이 내린 만큼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민들이 자주 구입하는 152개 생필품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7.1%나 뛰었다.

◆밀가루 인하폭 미미

식품업체들은 최근 밀가루 가격 인하폭이 미미해 제품가격을 조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라면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중력분 밀가루(20㎏)는 지난 4월 1만7510원에서 2만원으로 2490원(14.2%) 올랐다 지난달 말 1만8400원으로 1600원(8%) 내리는 데 그쳤다.

라면업체들은 원가의 20%를 차지하는 밀가루뿐 아니라 라면을 튀길 때 쓰는 팜유,스푸첨가물에다 포장지 등 원자재 가격이 30% 이상 올랐다고 항변한다. 롯데제과 해태제과 등도 상반기 주요 제품 가격을 20~40% 올린 것은 밀가루,유지(油脂.지방유),물류비 인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민 깊어지는 식품업계

그럼에도 식품업체들은 내부적으로 가격 점검에 나섰다. 최호민 농심 부장은 "생활물가가 치솟으면서 식품업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밀가루를 비롯 제품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문영태 롯데제과 팀장도 "경기침체와 물가 불안 등을 감안해 가격 조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샤니 등 제빵업체들도 내부적으로 가격 조정 여부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영세 식당에서 판매하는 자장면 칼국수 떡라면 등은 가격을 내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화곡동의 한 식당 점주는 "밀가루뿐 아니라 인건비,임대료 등을 두루 감안해 음식값을 올린 만큼 밀가루 가격이 내렸다고 당장 내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