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현 <표준품질선진화포럼 부회장>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기술장벽에 대한 협정(TBT)이 마련됨으로써 국제 표준준수 의무가 강화됐다. 이에 따라 선진국은 기술개발 초기부터 국제 표준을 목표로 하는 사전 표준화라는 새로운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실제로 세계시장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계인 윈도95는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탁월한 표준화 메타전략에 의거해 시장에서 시스템의 조직화를 유도하는 정보 공유,네트워크가 구성되면서 세계 표준이 된다. 이 표준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계의 세계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게 됐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디지털카메라의 파일 포맷은 일본의 캐논과 후지필름이 각자 독자적으로 개발해 사용하고 있었다. 일본은 각기 두 회사의 파일 포맷을 하나로 표준화시켜 일반용 디지털카메라 파일 포맷으로 국제표준화에 성공한다. 이 결과 일본은 일반용 디지털카메라 세계 시장의 80%를 점유하게 됐다. 이들은 기술개발이 표준을 만들어 낸 사례들이다.

그런가 하면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유엔 산하기구 등의 요청에 의해 국제 표준을 제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표준은 세계 각국이 준수할 책임을 갖게 하는 것이 많다. 그 중 하나가 ISO 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 표준이다. 우리나라도 ISO 22000을 국가 표준으로 채택했으나 그 중요성에 비해 보급에 실패했다.

이번 광우병 파동에 대한 대응에서 ISO 22000 도입 요구에 대한 논의가 없었을 뿐더러 이 표준의 일부분인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체계(HACCP)를 우리나라 식품안전시스템으로 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이를 반증한다. 이는 표준의 선택과 보급은 국가 산업의 경쟁력과 신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ISO 22000 식품안전경영시스템은 세계 모든 국가가 준수해야 할 국제표준이 될 것이며,각국은 이 표준에 따라 교역국가에 식품안전 책임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우리나라 표준화는 15개 부처 57개 법령에 의해 3만7000여종의 국가 표준,정부 규격,기술 기준 등이 제정돼 운영되고 있다. 이 많은 표준들이 갖는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되고 누가 그 가치를 평가하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표준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면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특히 지금처럼 기술의 발전속도가 빠르고 사용범위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추세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앞으로 세계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고,이해관계자들의 가치를 창출하며,이해를 조정하고,국제적인 권위와 전문성을 만들고,관련산업의 전체 경제성을 만들어야 하는 표준화의 선진화 과제는 정부 또는 민간의 특정조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첫째 우리나라 국가 표준화를 총괄하고 책임질 국가표준화기구가 발족돼야 한다. 또 각종 법령에 따라 제정·운영되는 표준,규격,기술기준을 국가표준으로 전환·통일 및 일원화해 새로운 국제표준 전략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법령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적합성 평가제도를 국제표준 ISO 17000시리즈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하나의 표준,하나의 시험,하나의 적합성 평가로 글로벌시장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셋째 정부,산업계,학계,전문 단체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민주적 운영 절차를 갖는 민간 전문 커뮤니티가 조직되고,기능별 업종별로 전국적으로 네트워크화돼 활동할 수 있도록 육성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