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올림픽 정치' 그 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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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연 < 서울시립대 교수·국제관계학 >
2008년 8월8일 저녁 8시8분8초.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개최되는 제29회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올림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에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그리고 힘과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확인시켜 주고 세계인들에게는 중국이 더 이상 위협과 불안의 대상이 아니라 안정과 협력의 주역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중화민족의 자긍심의 표양과 대동단결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인들에게 더욱 큰 쾌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20세기에 들어와 실추된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고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국제질서에 새로운 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천재일우의 호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중국인들은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시작된 제국의 몰락과 중화민족 우월주의의 추락이라는 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신중국이 건설된 뒤에도 이데올로기 갈등은 수십년간 국제사회에서 철처한 고립과 혼란을 초래,정상적인 국가로서의 기능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대내개혁 대외개방'의 추진을 덩샤오핑이라는 실용주의적 지도자의 시장경제 도입과 제한된 민주주의의 허용 정책에서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 수십년간 쌓여온 마오쩌둥 체제에서 파생된 평균주의와 당의 배타적 지배,교육이나 과학·전문성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는 과거의 유산에 대한 '라오바이싱(老百姓·서민)'들의 새로운 체제와 제도에 대한 욕구 등에서 기인한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을 주창하는 후진타오 정부는 개인의 창의성과 능력을 더욱 강조하고 이는 시진핑,리커창,보시라이와 같은 5세대 지도자들에게도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전문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테크노크라트에 의한 중국의 지배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이 중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공통된 숙제다.
'하나의 꿈,하나의 세계'라는 슬로건으로 세계평화와 공동번영에 동참하겠다는 중국의 희망이 제대로 이뤄질 것인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런 걱정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애국주의에서 기인하는 편협한 민족주의와 자국중심적 역사해석,서구로부터 항상 핍박받고 있다는 피해의식,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의 자의적 해석 등은 중국의 노력 없이는 바뀌거나 약화될 수 없는 요소들이다. 최근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티베트 독립문제나 수단 다르푸르 지원사태 같은 것들도 중국이 과연 선량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공정한 게임의 법칙에 순응할 수 있을지 미심쩍은 눈으로 보게 만든다.
중국이 우려해야 할 것은 서구가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체제의 혼란을 야기시키려는 이른바 '화평연변(和平演變)'이 아니라 당과 정부를 위한 중국에서 인민을 위한 체제로의 전환으로부터 야기되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외국에 보여주기 싫은 낡은 건물을 벽으로 가리기보다는 중국인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대규모 유흥업소나 공공장소를 폐쇄하는 것보다는 세계인들이 중국인들과 함께 대화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중국의 모습에서 세계인들은 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의 자신감보다는 체제유지에 불안해하는 중국의 유약한 모습을 떠올릴 것이 분명하다.
올림픽은 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화합과 번영을 약속하고 확인하는 세계인들의 축제다. 일본이 1964년의 도쿄올림픽으로,한국이 1988년의 서울올림픽으로 진정한 민주국가로 거듭났듯이 중국도 이번 베이징올림픽으로 더욱 성숙하고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2008년 8월8일 저녁 8시8분8초.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개최되는 제29회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올림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에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그리고 힘과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확인시켜 주고 세계인들에게는 중국이 더 이상 위협과 불안의 대상이 아니라 안정과 협력의 주역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중화민족의 자긍심의 표양과 대동단결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인들에게 더욱 큰 쾌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20세기에 들어와 실추된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고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국제질서에 새로운 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천재일우의 호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중국인들은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시작된 제국의 몰락과 중화민족 우월주의의 추락이라는 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신중국이 건설된 뒤에도 이데올로기 갈등은 수십년간 국제사회에서 철처한 고립과 혼란을 초래,정상적인 국가로서의 기능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대내개혁 대외개방'의 추진을 덩샤오핑이라는 실용주의적 지도자의 시장경제 도입과 제한된 민주주의의 허용 정책에서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 수십년간 쌓여온 마오쩌둥 체제에서 파생된 평균주의와 당의 배타적 지배,교육이나 과학·전문성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는 과거의 유산에 대한 '라오바이싱(老百姓·서민)'들의 새로운 체제와 제도에 대한 욕구 등에서 기인한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을 주창하는 후진타오 정부는 개인의 창의성과 능력을 더욱 강조하고 이는 시진핑,리커창,보시라이와 같은 5세대 지도자들에게도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전문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테크노크라트에 의한 중국의 지배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이 중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공통된 숙제다.
'하나의 꿈,하나의 세계'라는 슬로건으로 세계평화와 공동번영에 동참하겠다는 중국의 희망이 제대로 이뤄질 것인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런 걱정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애국주의에서 기인하는 편협한 민족주의와 자국중심적 역사해석,서구로부터 항상 핍박받고 있다는 피해의식,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의 자의적 해석 등은 중국의 노력 없이는 바뀌거나 약화될 수 없는 요소들이다. 최근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티베트 독립문제나 수단 다르푸르 지원사태 같은 것들도 중국이 과연 선량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공정한 게임의 법칙에 순응할 수 있을지 미심쩍은 눈으로 보게 만든다.
중국이 우려해야 할 것은 서구가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체제의 혼란을 야기시키려는 이른바 '화평연변(和平演變)'이 아니라 당과 정부를 위한 중국에서 인민을 위한 체제로의 전환으로부터 야기되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외국에 보여주기 싫은 낡은 건물을 벽으로 가리기보다는 중국인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대규모 유흥업소나 공공장소를 폐쇄하는 것보다는 세계인들이 중국인들과 함께 대화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중국의 모습에서 세계인들은 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의 자신감보다는 체제유지에 불안해하는 중국의 유약한 모습을 떠올릴 것이 분명하다.
올림픽은 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화합과 번영을 약속하고 확인하는 세계인들의 축제다. 일본이 1964년의 도쿄올림픽으로,한국이 1988년의 서울올림픽으로 진정한 민주국가로 거듭났듯이 중국도 이번 베이징올림픽으로 더욱 성숙하고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