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베이징올림픽위원회는 간단한 보도자료를 하나 배포했다. 올림픽선수촌이나 경기장에서 중국 화폐인 런민비와 비자카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비자카드는 올림픽 공식후원사니까 당연히 포함된 것이었겠지만 런민비만 쓰라는 것은 어쩐지 어색했다. 올림픽 축제엔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점에서 보면 당연히 미국 달러도 공용 화폐가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달러화는 그러나 베이징올림픽에선 퇴출당했다.

환율이 날마다 바뀌니까 계산이 복잡해서 그런지,아니면 웬만한 곳에서는 직접 쓰기 불편하니까 아예 달러를 쓰지말라고 공식화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호텔이나 시내 곳곳에서 달러가 통용된다는 점에서 보면 이런 설명은 앞뒤가 안 맞는다.

달러의 퇴출은 최근 중국과 미국 간의 미묘한 긴장 속에서 나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 올림픽 개막일이 가까워진 지난달 하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을 만났다. 중국 정부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은 인권문제에 관한한 중국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발언해 중국을 자극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도 각각 달라이 라마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직접 만나 중국의 심기를 거슬렀다. 중국 정부로선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달러를 퇴출시킴으로써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물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도 작용한 듯하다. 중국은 영어 알파벳이 아닌 한자 획순 순서로 올림픽 입장국 순서를 정해버렸다. 올림픽선수촌에 한자 교실을 만들어 외국인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겠다는 게 중국이다.

요즘 중국의 모습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기존 세계 질서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올림픽 이후 또다른 거인으로 성장해 있을 중국을 상상하노라면 두려움마저 든다. 중국의 산업 경쟁력은 이미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미국마저 우습게 볼지 모를 중국을 어떻게 상대하는지에 따라 한국의 미래가 좌우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