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한국에는 이렇다 할 산업시설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직장인들도 미군 군복을 검게 물들여 입었을 만큼 물자가 부족했다. 이 무렵 미군 PX를 통해 시중에 흘러나온 진공관 라디오는 경이로운 물건이었다. 플라스틱 상자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가격도 비쌌다. 최고급으로 치던 미국 제니스 라디오는 암시장에서 쌀 50가마 가격(45만환)에 거래됐다.

고(故)구인회 LG그룹 창업 회장은 1958년 라디오 국산화를 위해 국내 최초의 전자업체인 금성사를 설립했다. "나사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나라에서 무슨 라디오냐"며 코웃음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구 창업회장의 결심은 확고했다. 금성사는 수입 라디오를 수리하던 전파사 사장들을 엔지니어로 선발해 설계를 맡겼다. 수입 부품을 사올 외화가 부족해 대부분의 부품을 직접 제작했다. 이렇게 만든 것이 1959년 11월 출시된 최초의 국산 라디오 '금성 A-501'이다.

한국의 전자산업은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툭하면 소리가 끊어지던 진공관 라디오를 들으며 오늘의 'IT강국'을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