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나누는 것은 비전과 핵심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생각이 같아야 같은 방향으로 효율적으로 일해 나갈 수 있으니까요. 제 독서 경영은 '섬기는 세정'을 구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

한상률 국세청장의 '독서 경영'이 관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청장의 새로운 시도는 전국 세무공무원들이 '납세자를 섬긴다'는 공통 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국세 행정 전반에 중요한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청장은 전국 세무관청을 돌면서 일일이 책을 나눠주고 직접 특강에 나서고 있다. 지시하듯 직접 방향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독서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의 방법은 세무공무원들의 의식 변화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한 청장이 고른 첫 책은 '서번트 리더십'(제임스 C 헌터 지음,김광수 옮김)이다. 그는 이 책이 제목에서부터 국세청의 '섬기는 세정' 확립과 잘 맞아떨어진다며 '리더십'은 '봉사'의 다른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월29일 수원 국세공무원교육원을 시작으로 7월 말까지 전국을 돌며 8000여명의 세무공무원을 대상으로 총 24회의 '서번트 리더십' 특강을 했다. 국ㆍ과장급은 물론 일선 세무공무원들에게까지 218권의 책을 선물했다. 그는 다소 딱딱한 책의 내용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예를 꼭 들었다. 중국 청나라 강희제의 치세술과 에베레스트산을 최초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세르파(안내자)였던 텐징 노르가이의 이야기다.

"만주족인 강희제는 지배하고 있는 한족 출신 관료들과 한 자리에서 음식을 나눠 먹는 '만한전석(滿漢全席)'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구부려 온 힘을 다한다는 '국궁진력(鞠躬盡力)'을 강조했죠.우리 직원들이 가슴 깊이 새길 만합니다. "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지칭한 텐징 노르가이에게서도 '서번트 리더십'을 찾을 수 있다는 것.한 청장이 소개한 "나는 싸움터에 나가는 병사의 기력으로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 무릎에 안기는 심정으로 산에 오른다"는 그의 말은 직원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오는 26일부터 다시 특강에 나서는 한 청장은 이번에는 예일대 음대 함신익 교수의 '예일대 명물교수 함토벤' 300권을 주문했다. 지난달 함 교수의 연주회를 찾은 한 청장은 그가 무대 맨 앞에서 인사를 받는 다른 지휘자들과 달리 단원들 맨 뒤로 가서 서는 '섬기는 자세'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개척교회 목사의 아들로 달동네에서 태어난 그가 단돈 200달러를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예일대 교수가 된 스토리에는 열정ㆍ도전ㆍ창의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성취하기 힘든 것을 성취하고,다른 사람에게 받은 것을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죠."

평소 바쁜 업무 와중에도 틈틈이 독서를 즐기는 그는 지난주 휴가를 앞두고 '통찰과 포용(하워드 가드너)' '반조류의 중국(마크 블레처)'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리처드 D 루이스)' 등 몇 권의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처리할 업무가 적지 않아 직원들 몰래 사흘간 출근을 해야 했다.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는 아직 30페이지 정도밖에 읽지 못했어요. 하지만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데 독서만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직원들에게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할 생각입니다. "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