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공직자 로펌行제한] "前職 내세워 인ㆍ허가 개입…사실상 로비스트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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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로펌은 최근 금융 관련 정부기관장 출신 한 인사를 고문으로 영입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금융시장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인사라 다른 2~3개 로펌이 영입하려고 경합했기 때문.
몇 차례 찾아가고 설득한 끝에 최근 상견례를 하고 영입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이처럼 '잘 나가는' 전직 고위 관료들에 대한 로펌의 러브콜은 노골적이다. 그럴수록 전직 관료들의 로펌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행정안전부 등이 최근 전직 관료들의 로펌행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서면서 해묵은 찬반 논란에 불을 붙였다.
◆"유착과 로비 등 폐단 막아야"
로펌에 새롭게 둥지를 튼 전직 관료들에 대해 "전력을 내세워 사건을 유치하고 인ㆍ허가 과정에 개입하는 사실상의 브로커나 로비스트 아니냐"며 색안경을 쓰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대형 로펌이 이들 고문에게 지급하는 연봉은 대략 2억~5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활용가치는 이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예전과 달리 고위 공직자 출신이 외압을 넣는다고 안 될 일이 되지는 않는다"면서도 "고문들은 출신 부처와의 업무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거들어주고 해당 기관의 사건을 수임해 오는 역할만 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제17조)에 따르면 4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퇴직 직전 3년 동안 근무한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 사기업체에 퇴직 후 2년간 취업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 로펌은 이런 법망을 빠져 나간다. 법 시행령(제33조)에서 정한 사기업체 기준(자본금 50억원 이상에 외형 거래액 연간 150억원 이상)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유한법인으로 전환한 태평양의 경우 설립에 필요한 최소자본금이 5억원에 불과하다. 조합원들이 출자한 김앤장 합동법률사무소는 자본금 자체가 없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시행령에서 자본금 등 요건을 대폭 낮추거나 아예 폐지하는 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또 퇴직 공무원의 취업금지 기간을 퇴직 후 2년에서 3~5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퇴직 후 대형 로펌 및 회계법인 등에 3년간 진출을 금지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로비스트가 법제화되지 않은 국내에선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이 인ㆍ허가 과정의 로비스트 역할을 전직 고위 공무원들에게 맡기고 있다"며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비법률가로 법률시장 전문화 보완"
현재 고문이 없는 대형 로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로펌의 '고문 제도'는 이미 일반화돼 정착 단계에 와 있다. 법원이나 검찰 등에서 판ㆍ검사가 금융감독원이나 국세청 직원 등 비법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처리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이다.
김앤장 소속 변호사는 "대학과 사법연수원에서 법학 위주의 공부를 해온 법조인들만으로 단기간 내에 로펌의 전문화를 도모할 수 없다"며 "누구든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맞지만 법률시장 개방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진입장벽까지 두는 것은 시장의 흐름과 동떨어진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조세 등 다양한 분야 출신의 전문가 지원은 그만큼 고객에 대한 서비스 수준을 높여 국내 법률시장의 전체적인 수준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전직 관료들의 역할과 관련,태평양의 한 변호사는 "고문들도 변호사나 회계사처럼 전문가 그룹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타임차지(시간에 따라 수임료 계산)하는 분들도 있고 사건 수임이나 해결에 도움을 주는 분 등 역할이 다양하다"며 "나이 많은 변호사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