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손해보험사에서 최근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업무상 고충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이런 답변이 많이 나왔다. 부서장의 고유 권한인 인사와 평가를 '고충'이라고 표현한 것은 지난 10여년 설문조사 동안 처음 보는 경우라고 한다. 회사조직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긴 직접적인 원인은 교차판매(cross selling)다. 생명보험사가 손해보험사 상품을,또 손보사가 생보사 상품을 팔 수 있게 되면서 자기 회사에선 판매실적이 나빠도 다른 회사 상품을 팔아 높은 실적을 올리는 사람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보험백화점이라 불리는 독립판매법인(GAㆍGeneral Agency)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스카우트 경쟁까지 벌인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회사의 대접이 소홀하다고 생각되면 바로 회사를 옮겨 버린다. 심할 경우에는 수십명의 팀원들까지 데리고 가기도 한다. 부서장이 인사와 평가로 부하를 통제할 방법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만의 일이 아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도 '우리 사원' '남의 직원'을 나누기가 어려워진 것은 이미 일반적인 현상이다. 큰 공장에서는 물론이고 일반 사무실에서도 '출신'이 많이 다르다. 파견업체에서 온 용역사원도 출근하고,컨설팅 프로젝트로 참여한 외국인 전문가도 앉아있다. 아르바이트생은 넘치고 얼굴 모르는 인턴사원이 갑자기 나타난다. 간부급에서도 다른 조직의 사람들이 비상근,겸직,사외이사 등의 직함을 달고 '우리 회사'에 자주 들른다.
회사의 특정 부분을 분사시킬 경우는 일은 옆 부서에서 그대로 하면서도 소속 조직이 완전히 달라져버리기도 한다. 은행에 전화를 걸면 대부분의 경우 그 은행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전문 콜센터대행업체인 경우가 훨씬 많다. 과연 어디까지가 '우리 회사'인가.
이런 상황에서 한 회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직원 체육대회를 하면 누구까지 참여시켜야 하는가. '진짜' 사원만 데려가자니 섭섭해하는 사람이 많고,모두를 참여시켜놓고 보니 예전과는 달리 '끈끈한' 야유회를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기업문화 교육을 시킨다면 과연 누구까지 대상으로 해야 하느냐 말이다.
회사의 경계가 옅어지고 사원의 구분이 애매해진 것은 기업들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선택한 결과다. 특히 인터넷과 각종 사무소프트웨어 덕분에 업무의 표준화가 가속화되고,글로벌 차원의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진 21세기 들어 이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느슨한 계약관계로 직장사회가 변해가고 있다. 다니엘 핑크 같은 미래학자들 말대로 "프리에이전트(Free Agent:자유계약선수)의 시대가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찰스 핸드의 책 제목 그대로 '코끼리와 벼룩'으로 회사와 직원들 사이의 관계가 설정되는 대전환기의 양상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럴 때일수록 경쟁력을 다져야 하는데,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의리를 요구할 방법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힘을 자랑하던 인사(HR:Human Resource)부서가 조직변화와 인력이동이 많아지면서 서류처리에 묻혀 사는 3D부서로 추락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영자들이 사람과 관련된 이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회사의 비전과 목표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