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울시내 백화점에서 14만원인 프랑스산 '샤토 탈보 2003'이 일본 도쿄 이세탄백화점에선 5만3000원대(5700엔)이고 미국 뉴욕 백화점에선 2만5000원대(25달러)에 불과하다. 1인당 소득이 미국.일본의 절반 미만이고 물가도 상대적으로 싼 한국에서 똑같은 와인을 2~5배 비싼 가격에 마시는 셈이다.

#2.지난달 24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은 직수입을 통해 '몬테스 알파''1865''샤토 탈보' 등 350여종의 와인 가격을 일률적으로 10~50%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그동안 '와인은 비싼 것'이란 그릇된 인식을 깨는 동시에 국내 와인 가격에 거품이 잔뜩 끼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산지 6500원짜리가 3만8000원

국내 와인 유통구조는 수입업체가 산지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구입한 뒤 도매상과 소매점(백화점,호텔,대형마트,와인소매점 등)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인기가 높은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쇼비뇽'의 산지 가격은 6500원(6.39달러)이지만 소비자가격은 백화점에서 3만8000원,대형마트에서도 3만4500원이다. 조선호텔은 이 와인을 마트보다 싼 3만3000원에 팔겠다고 나서 주목을 끌었다.

업계 교환자료를 통해 이 와인의 유통구조를 추적해 보면 왜 수입원가 대비 2배에 가까운 마진이 붙어 판매되는지 알 수 있다. 산지가격(6500원)에다 △운임 975원 △각종 세금 5103원 △국내 운송.보관료 748원을 합친 수입원가는 1만3326원.소비자가격이 3만8000원이므로 수입사.도매상.소매점의 총 유통마진은 수입원가 대비 185%에 달한다.

수입사와 도매상들은 유통마진이 각각 20%,백화점 등 소매점은 40% 안팎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도매상이 소매점에 넘기는 가격이 2만787원이며,소매점 마진을 붙인 판매가격은 2만8462원이어야 맞다. 하지만 실제 판매가격과 9500원가량 차이가 난다. 결국 실제로는 수입사와 도매상이 각각 30~40%,소매점은 50%의 마진을 챙긴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서울 와인값 도쿄 뉴욕의 2~3배

이른바 '괜찮은 와인'을 마시는데 미국에선 10달러(약 1만원),일본에선 1500엔(약 1만4000원)이면 가능하지만 국내에선 아무리 싼 것도 3만원 이상이다. 초고급 와인의 하나인 '샤토 마고 2000'이 뉴욕에선 100만원 남짓한데 서울에선 2배인 200만원이다. '몬테스 알파'는 도쿄(약 1만7000원),뉴욕(약 2만3200원)에 비해 2배 안팎에 달한다.

똑같은 와인이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5~6배까지 비싼 것은 복잡한 세금과 유통구조 탓도 있지만 '와인은 비싸야 맛있다'란 국내 고가 와인 선호현상도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몬테스 알파' 같은 와인이 국내 고급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 가면 거의 '폭탄' 수준이 된다. 청담동 B레스토랑 관계자는 "특급호텔 레스토랑이나 고급 와인바에선 특별한 기준 없이 80~200%의 마진을 추가로 붙여 '몬테스 알파'를 최고 20만원대에 파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와인 '박리다매' 시대 열리나

와인가격 거품 논란 속에 최근 신세계 LG 롯데 두산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와인사업을 확장하면서 가격인하 경쟁이 서서히 불붙고 있다. 대기업들은 직수입,대량 구매,앙프리머(선물) 구매 등으로 가격을 내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와인 직수입을 위해 조선호텔.이마트.신세계백화점의 와인바이어들로 팀을 구성,해외 와이너리와 국내시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유통파워를 갖춘 신세계는 국내 와인시장의 14%를 점유하고 있고 롯데계열 롯데아사히주류도 와인사업을 강화해 기존 와인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1월 주류 수입업체 트윈와인을 설립한 LG상사는 수입 와인 브랜드를 늘리고 있다. 최근 갤러리아백화점 와인숍 '에노테카'의 차장급 소믈리에를 영입했고 국내에서 인기 있는 와인 수입권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와이너리들과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