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야 '귀족 아이들'
(13일~9월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

이름 모를 새들이
낮게 다가와 새벽잠을 깨운다
밤새 뱃속을 텅 비운
새들의 목소리가 파문을 일으킨다
그 소리 너무 밝고 맑아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을 때
아파트 난간을 타고 내려오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부엌에서 밥 끓어 넘치는 소리
하루는 공복으로 시작되어
배고픈 것들만이 울 수 있고
잠자는 것들을 흔들어 깨우나니
나는 무엇을 비워
세상을 공명하게 할 것인지

송종찬 '새벽에 새소리를 듣다' 전문


그래,이런 소리들이 있었다. 새벽에 들리는 청아한 새소리,젖 달라고 막무가내로 보채는 아기의 울음소리,구수한 냄새와 함께 밥 끓어 넘치는 소리… 자주 듣지 못해 잊고 있었지만 혼탁한 세상 살 맛 나게 하는 소리들이다. 어떤 이해관계도 없어 누구나 듣기 좋은 이런 자연의 소리를 내 본 것이 언제였나. 무엇을 요구하거나 자랑하거나 거부하는 소리로 세상을 어지럽혔을 뿐이다. 비우고 비워야 마침내 자연에 가까워질 터인데 무엇에 쓸지도 모르는 것들을 자꾸 쌓아만 가고 있다. 신새벽 배고파 우는 아기나 새들처럼 뱃속과 마음속을 텅 비우고 세상을 공명하게 하는 날이 오기는 올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