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도전의 순간들] (6) 12만t 鐵구조물, 한국서 만들어 사우디 수송 … 세계는 기적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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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건국 후 최고의 외환보유고를 기록했습니다. " 외환은행장의 전화였다. 현대건설이 1976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건설 공사계약을 체결한 뒤 선수금 2억달러를 입금한 직후다. 외환사정은 최악이었고 국가 부도설까지 떠돌던 때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을 불러 포옹까지 하며 감격스러워한다.
1973년 닥친 1차 오일쇼크. 배럴당 1달러75센트 하던 원유값이 2년도 안 돼 10달러까지 치솟는다. 한국은 파산 직전의 상황에 직면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976년 총외채는 105달러,외환보유액은 29억6000만달러였다.
"국가적으로도,우리 현대로서도 중대한 결심이 필요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중동으로 가서 그곳으로 몰려가는 오일달러를 잡아오는 것뿐이었다"(정주영 자서전-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중동(中東)신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현대건설은 해외 진출 10년 만에 주베일산업항 건설 공사를 수주한다. 항구와 기반시설을 만들기 위해 300m 짜리 산 하나를 통째로 메워넣어야 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수주액은 9억3000만달러. 1975년 우리나라 해외건설 수주총액(8억1000만달러)보다 많았다.
공사기간(44개월)을 8개월 단축하는 조건으로 공사를 따낸 정 회장은 대모험을 감행한다. 철골구조물(자켓)을 비롯한 12만 t의 기자재를 울산조선소에서 만들어 1만2000㎞ 떨어진 현장까지 바지선(무동력선)으로 실어나르기로 한 것. 무모한 계획이라고 비웃던 외국인들은 19차례에 걸친 대양수송작전이 성공하자 혀를 내두른다.
그들이 놀라 펄쩍 뛴 일이 또 있다. 1개당 무게가 550t 인 89개의 자켓 설치공사와 함께 각 자켓 사이를 연결할 20m 짜리 시멘트 빔(beam)을 울산에서 동시에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였다. 수심 30m 의 해저에서 파도에 흔들리는 자켓을 한계오차 5㎝ 이내에서 꼭 20m 간격으로 설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구나 시멘트 빔은 한번 만들면 깎거나 늘릴 수 없다. 감독관들이 자켓 설치가 끝날 때까지 빔 제작을 중단하라고 난리쳤지만 정 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는다. 결국 하나의 실수도 없이 자켓을 완벽하게 설치,다시 한번 모두를 경악시킨다.
도전정신과 함께 땀과 열정도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성공한 요인이다. 197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다시 미화(美化)공사를 벌이던 삼환기업은 난데없는 요구를 받는다. 지다공항에서 성지 메카 쪽으로 향하는 2㎞의 공항로 확장공사를 '하지'(이슬람의 성지순례)가 시작되기 전인 40일 안에 끝내달라는 것. 고심 끝에 8시간 3교대 작업으로 24시간 돌관(突貫)작업에 나선다. 이 광경을 우연히 목격한 파이잘 사우디국왕은 후속 공사를 삼환기업에 맡기라는 특명을 내린다. 삼환은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후속공사를 독차지한다.
대우개발(옛 대우건설)도 1980년 사하라사막의 우조 비행장 건설공사를 하면서 공기를 맞추기 위해 밤샘작업을 강행,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를 감동시켰다. 카다피 원수가 대우 측에 "오랫동안 머물러 달라"고 당부한 뒤부터 대우는 대형공사 수주를 싹쓸이한다.
대림산업은 1988년 6월 이란 캉간 가스정제공장 건설공사를 벌이던 중 이라크 공군기의 현장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공사를 포기하지 않고 완수,무한신뢰를 얻는다. 대림산업은 지금도 이란 지역의 각종 공사 제안서를 빠짐없이 받고 있고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중동 신화의 후광효과는 동아건설의 리비아대수로 공사 수주로 이어진다. 동아는 1983년 11월 1단계 공사를 36억달러에,1989년 8월엔 55억5000만달러에 2단계 공사를 맡는다.
중동 특수는 국내 경제에 큰 기여를 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차 오일쇼크 때(1981~1984년) 해외건설로 벌어들인 외화는 총 86억달러. 같은 기간 238억달러였던 석유수입 대금의 36%다. 중동 붐이 정점에 달한 1982년 한 해 동안 해외 현장에 내보낸 인력만 17만여명에 달한다.
국내 건설사들은 최근 중동에서 제2의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건설 GS건설 SK건설은 올 들어 카타르와 쿠웨이트에서 각각 20억달러짜리 대규모 공사를 수주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UAE(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내년 하반기 세계 최고층 건축물인 '버즈 두바이'를 완공한다. 올 들어 7월 말까지의 해외 수주금액 347억달러 중 60%(207억달러)를 중동에서 올렸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주실적의 80%를 차지하는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서 벗어나 신시장을 개척하고 사업분야를 보다 다양화하면 해외건설이 제2의 중흥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
1973년 닥친 1차 오일쇼크. 배럴당 1달러75센트 하던 원유값이 2년도 안 돼 10달러까지 치솟는다. 한국은 파산 직전의 상황에 직면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976년 총외채는 105달러,외환보유액은 29억6000만달러였다.
"국가적으로도,우리 현대로서도 중대한 결심이 필요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중동으로 가서 그곳으로 몰려가는 오일달러를 잡아오는 것뿐이었다"(정주영 자서전-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중동(中東)신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현대건설은 해외 진출 10년 만에 주베일산업항 건설 공사를 수주한다. 항구와 기반시설을 만들기 위해 300m 짜리 산 하나를 통째로 메워넣어야 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수주액은 9억3000만달러. 1975년 우리나라 해외건설 수주총액(8억1000만달러)보다 많았다.
공사기간(44개월)을 8개월 단축하는 조건으로 공사를 따낸 정 회장은 대모험을 감행한다. 철골구조물(자켓)을 비롯한 12만 t의 기자재를 울산조선소에서 만들어 1만2000㎞ 떨어진 현장까지 바지선(무동력선)으로 실어나르기로 한 것. 무모한 계획이라고 비웃던 외국인들은 19차례에 걸친 대양수송작전이 성공하자 혀를 내두른다.
그들이 놀라 펄쩍 뛴 일이 또 있다. 1개당 무게가 550t 인 89개의 자켓 설치공사와 함께 각 자켓 사이를 연결할 20m 짜리 시멘트 빔(beam)을 울산에서 동시에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였다. 수심 30m 의 해저에서 파도에 흔들리는 자켓을 한계오차 5㎝ 이내에서 꼭 20m 간격으로 설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구나 시멘트 빔은 한번 만들면 깎거나 늘릴 수 없다. 감독관들이 자켓 설치가 끝날 때까지 빔 제작을 중단하라고 난리쳤지만 정 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는다. 결국 하나의 실수도 없이 자켓을 완벽하게 설치,다시 한번 모두를 경악시킨다.
도전정신과 함께 땀과 열정도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성공한 요인이다. 197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다시 미화(美化)공사를 벌이던 삼환기업은 난데없는 요구를 받는다. 지다공항에서 성지 메카 쪽으로 향하는 2㎞의 공항로 확장공사를 '하지'(이슬람의 성지순례)가 시작되기 전인 40일 안에 끝내달라는 것. 고심 끝에 8시간 3교대 작업으로 24시간 돌관(突貫)작업에 나선다. 이 광경을 우연히 목격한 파이잘 사우디국왕은 후속 공사를 삼환기업에 맡기라는 특명을 내린다. 삼환은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후속공사를 독차지한다.
대우개발(옛 대우건설)도 1980년 사하라사막의 우조 비행장 건설공사를 하면서 공기를 맞추기 위해 밤샘작업을 강행,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를 감동시켰다. 카다피 원수가 대우 측에 "오랫동안 머물러 달라"고 당부한 뒤부터 대우는 대형공사 수주를 싹쓸이한다.
대림산업은 1988년 6월 이란 캉간 가스정제공장 건설공사를 벌이던 중 이라크 공군기의 현장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공사를 포기하지 않고 완수,무한신뢰를 얻는다. 대림산업은 지금도 이란 지역의 각종 공사 제안서를 빠짐없이 받고 있고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중동 신화의 후광효과는 동아건설의 리비아대수로 공사 수주로 이어진다. 동아는 1983년 11월 1단계 공사를 36억달러에,1989년 8월엔 55억5000만달러에 2단계 공사를 맡는다.
중동 특수는 국내 경제에 큰 기여를 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차 오일쇼크 때(1981~1984년) 해외건설로 벌어들인 외화는 총 86억달러. 같은 기간 238억달러였던 석유수입 대금의 36%다. 중동 붐이 정점에 달한 1982년 한 해 동안 해외 현장에 내보낸 인력만 17만여명에 달한다.
국내 건설사들은 최근 중동에서 제2의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건설 GS건설 SK건설은 올 들어 카타르와 쿠웨이트에서 각각 20억달러짜리 대규모 공사를 수주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UAE(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내년 하반기 세계 최고층 건축물인 '버즈 두바이'를 완공한다. 올 들어 7월 말까지의 해외 수주금액 347억달러 중 60%(207억달러)를 중동에서 올렸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주실적의 80%를 차지하는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서 벗어나 신시장을 개척하고 사업분야를 보다 다양화하면 해외건설이 제2의 중흥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