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도전의 순간들] (6) "불가능 했기에 도전… 중동 1세대가 만든 길 후배들 닦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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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만 공사가 국내 최대 사업비(154억원)를 자랑하며 한창 진행 중이던 1976년 7월.당시 공사현장 책임자였던 현대건설 김용제씨(69)는 갑작스레 사우디아라비아로 발령이 났다.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이 주베일산업항 초대 현장소장을 맡긴 것이다. "9억4000만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사를 담당하게 된다는 사실에 부담도 됐지만 솔직히 걱정할 시간조차 없었어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하루 수 백명씩 몰려오는 노동자의 숙소를 만든 데 정신이 없었죠."
연인원 250만명,하루 최대 3600명이 동원된 공사의 책임자 김 소장은 공정의 90%를 끝내고 주베일을 떠나기까지 33개월 동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는 "일하고 잠자고 가족에게 편지 쓰는 일밖에 몰랐다"고 회고했다. 주베일항 공사에 신경을 곤두세운 정 회장도 착공 후 1년간 매일 위성전화로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정 회장은 세계가 지켜보는 공사이니 모두들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라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강조했습니다. "
사실 주베일은 단순한 항만공사가 아니었다. 현지의 노사 간 대화채널에서 국가적 사명감을 강조해 새마을협의회라 불렀을 정도다. 김씨는 "저를 포함해 모든 임직원이 현대건설 직원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대표라는 마음으로 일했다"며 "애국한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역경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국가적 관심사다 보니 현장에서 우발적인 사고로 파업이 한 차례 일어났을 때는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까지 현장으로 달려왔다.
역사적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김씨에게는 푸짐한 포상이 주어졌다. "1977년 9월 현장담당 14개월 만에 상무로 승진했습니다. 38살이면 많은 나이라 할 수는 없었죠." 현대건설 입사동기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사장을 지냈던 탓에 다소 빛을 보지 못했지만 초고속 승진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공사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5ㆍ16민족상'을 주기도 했다. 김씨는 "남들이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도전이었기에 영광스러운 결과를 빚어냈다"며 "중동 1세대가 만든 길을 후배들이 잘 닦아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연인원 250만명,하루 최대 3600명이 동원된 공사의 책임자 김 소장은 공정의 90%를 끝내고 주베일을 떠나기까지 33개월 동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는 "일하고 잠자고 가족에게 편지 쓰는 일밖에 몰랐다"고 회고했다. 주베일항 공사에 신경을 곤두세운 정 회장도 착공 후 1년간 매일 위성전화로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정 회장은 세계가 지켜보는 공사이니 모두들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라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강조했습니다. "
사실 주베일은 단순한 항만공사가 아니었다. 현지의 노사 간 대화채널에서 국가적 사명감을 강조해 새마을협의회라 불렀을 정도다. 김씨는 "저를 포함해 모든 임직원이 현대건설 직원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대표라는 마음으로 일했다"며 "애국한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역경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국가적 관심사다 보니 현장에서 우발적인 사고로 파업이 한 차례 일어났을 때는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까지 현장으로 달려왔다.
역사적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김씨에게는 푸짐한 포상이 주어졌다. "1977년 9월 현장담당 14개월 만에 상무로 승진했습니다. 38살이면 많은 나이라 할 수는 없었죠." 현대건설 입사동기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사장을 지냈던 탓에 다소 빛을 보지 못했지만 초고속 승진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공사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5ㆍ16민족상'을 주기도 했다. 김씨는 "남들이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도전이었기에 영광스러운 결과를 빚어냈다"며 "중동 1세대가 만든 길을 후배들이 잘 닦아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