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저 동양소년이 수영 금메달 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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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켓 누르고 '세계 수영반란'
"어젯밤 태환이가 내게 와서 금메달을 못따면 어떡하죠'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너는 올림픽 결선을 뛰는 순간 역사를 쓰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
노민상 한국수영대표팀 감독은 10일 베이징 국가아쿠아틱센터에서 박태환(19·단국대)이 자유형 400m에서 금빛 물살을 가르며 한국 수영의 숙원을 이룬 뒤 이같이 털어놨다. 변방에 머물던 한국 수영의 위상을 단번에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1989년 9월27일 박인호(58) 유성미(51)씨의 1녀1남 중 둘째로 태어난 박태환은 천식을 앓던 7살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동네 수영장에서 물에 처음 뛰어들었다. 어린 박태환이 수영에 재능을 보이자 부모는 전문 수영선수로 키우기로 마음을 먹었고,수소문해 찾아간 곳이 노민상 현 수영대표팀 총감독이 운영하던 '윈윈클럽'이었다. 윈윈클럽에서의 체계적인 교습으로 박태환의 재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박태환은 이후 소년체전에서 우승을 거듭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김봉조 당시 수영대표팀 감독에게 발탁되면서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꿈을 품고 나선 올림픽 무대에서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너무 긴장한 탓인지 준비 구령 소리에 물속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수영은 육상처럼 부정출발에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박태환은 그대로 퇴장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올림픽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해 1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경영월드컵(쇼트코스) 자유형 1500m에서 준우승을 하며 자신의 기량을 세계에 처음 알렸다.
이후 박태환은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담력과 승부욕을 키워갔고 이듬해인 2005년에도 메달 및 신기록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4월 동아수영대회와 6월 국가대표 기록평가회,7월 캐나다 몬트리올 세계수영선수권대회,10월 전국체전,11월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등에서 한국신기록을 무려 8개나 쏟아냈다.
2006년은 박태환이 아시아 최정상에 오른 해였다. 8월 범태평양수영대회에서 아시아 신기록 2개를 세우면서 금메달 2개,은메달 1개를 따냈다. 12월에 열린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자유형 200m와 400m,1500m를 모두 휩쓸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아시안게임 직후 태릉선수촌을 나오면서 노 감독과 결별한 박태환은 후원사인 수영용품 전문 브랜드 스피도가 꾸린 전담팀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그랜트 해켓(호주)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8월 일본국제수영대회 자유형 400m에서 다시 한번 해켓을 무너뜨린 박태환은 11월 국제수영연맹 경영월드컵 3개 시리즈에서 3연속 3관왕에 오르며 올림픽 금메달 꿈을 키워갔다.
태릉선수촌에서 노 감독과 재결합해 24주간의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해낸 박태환은 결국 한국 수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이번 대회 한국선수단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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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상 한국수영대표팀 감독은 10일 베이징 국가아쿠아틱센터에서 박태환(19·단국대)이 자유형 400m에서 금빛 물살을 가르며 한국 수영의 숙원을 이룬 뒤 이같이 털어놨다. 변방에 머물던 한국 수영의 위상을 단번에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1989년 9월27일 박인호(58) 유성미(51)씨의 1녀1남 중 둘째로 태어난 박태환은 천식을 앓던 7살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동네 수영장에서 물에 처음 뛰어들었다. 어린 박태환이 수영에 재능을 보이자 부모는 전문 수영선수로 키우기로 마음을 먹었고,수소문해 찾아간 곳이 노민상 현 수영대표팀 총감독이 운영하던 '윈윈클럽'이었다. 윈윈클럽에서의 체계적인 교습으로 박태환의 재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박태환은 이후 소년체전에서 우승을 거듭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김봉조 당시 수영대표팀 감독에게 발탁되면서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꿈을 품고 나선 올림픽 무대에서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너무 긴장한 탓인지 준비 구령 소리에 물속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수영은 육상처럼 부정출발에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박태환은 그대로 퇴장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올림픽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해 1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경영월드컵(쇼트코스) 자유형 1500m에서 준우승을 하며 자신의 기량을 세계에 처음 알렸다.
이후 박태환은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담력과 승부욕을 키워갔고 이듬해인 2005년에도 메달 및 신기록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4월 동아수영대회와 6월 국가대표 기록평가회,7월 캐나다 몬트리올 세계수영선수권대회,10월 전국체전,11월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등에서 한국신기록을 무려 8개나 쏟아냈다.
2006년은 박태환이 아시아 최정상에 오른 해였다. 8월 범태평양수영대회에서 아시아 신기록 2개를 세우면서 금메달 2개,은메달 1개를 따냈다. 12월에 열린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자유형 200m와 400m,1500m를 모두 휩쓸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아시안게임 직후 태릉선수촌을 나오면서 노 감독과 결별한 박태환은 후원사인 수영용품 전문 브랜드 스피도가 꾸린 전담팀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그랜트 해켓(호주)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8월 일본국제수영대회 자유형 400m에서 다시 한번 해켓을 무너뜨린 박태환은 11월 국제수영연맹 경영월드컵 3개 시리즈에서 3연속 3관왕에 오르며 올림픽 금메달 꿈을 키워갔다.
태릉선수촌에서 노 감독과 재결합해 24주간의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해낸 박태환은 결국 한국 수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이번 대회 한국선수단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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