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냐오차오(올림픽 주경기장) 옆에 위치한 삼성전자 홍보관.12개 공식 후원업체에 주어진 권리로 설치허가를 받은 삼성전자의 올림픽 마케팅 전진기지다. 하지만 부스 안에는 삼성 TV도 모니터도 보이지 않는다. 삼성 브랜드는 모조리 테이프로 안 보이게 가려져 있다. 무선통신분야 후원업체라는 이유로 휴대폰 외에는 삼성 브랜드를 노출시킬 수 없다는 국제올림픽조직위(IOC)의 지시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간판 가전업체인 하이얼과 레노버는 베이징올림픽을 활용해 펄펄 나는 중이다. 국영 CCTV는 지난 9일 저녁 올림픽 방송 때 프로그램 진행자 좌우 양쪽에 하이얼과 레노버 로고가 선명한 TV와 PC를 설치했다. 올림픽을 이용한 간접광고임이 분명하지만 제품 선택은 CCTV의 자유이고,상품 브랜드를 굳이 떼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CCTV 측 설명이다.

올림픽을 통한 중국 정부의 토종회사 키우기가 노골적이다. IOC는 후원업체에 대해 올림픽 기간 중 배타적 권리를 철저히 보장해준다. 비후원사는 올림픽이 열리는 도시에 설치된 광고판을 다 내려야 할 정도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규정이 적어도 중국 기업에는 안 먹히고 있다. 국영기업인 CCTV가 밀어주는 것은 하이얼과 레노버만이 아니다. 스포츠용품업체인 리닝에 대해선 한 술 더 뜬다. 리닝은 전 체조선수인 리닝이 자신의 이름을 본떠 만든 회사다. 중국 정부는 리닝을 성화 봉송의 마지막 주자로 등장시켰다. 미국 마케팅회사인 AKT의 한 관계자는 "개막식의 성화 점화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볼 때 리닝에 의한,리닝을 위한,리닝의 쇼"라고 말했다. 중국 TV 스포츠중계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은 리닝 브랜드가 박힌 옷을 입고 마이크를 잡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에게 노출된 브랜드가 가져올 홍보 효과는 액수로 따지기 어려운 수준이다.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지난 8일 냐오차오 안에서도 중국 회사 밀어주기는 눈에 띄었다.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당초 냐오차오에 입장할 때 회사 로고가 선명한 옷은 입을 수 없다는 복장 규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개막식 당일 냐오차오 안은 레노버 천지였다. 레노버 브랜드가 박힌 옷을 입은 관객들이 줄을 이었던 것이다. 한 마케팅 관계자는 "IOC는 천문학적 돈을 낸 후원업체를 보호하도록 세부 사항까지 규정하고 있지만 이 규정을 집행할 중국 정부는 중국 회사에는 다른 규정을 적용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오광진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