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앙방송은 2006년 11월,역사 다큐멘터리 '대국굴기(大國堀起)'를 방영했다. 12부작으로 된 이 다큐멘터리는 강대국이었던 스페인ㆍ포르투갈ㆍ네덜란드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일본ㆍ러시아ㆍ미국의 전성기와 발전과정을 다뤘다. 마지막 편 '21세기 대국의 길'에서는 중국을 방영했는데 '굴기'라는 뜻처럼 세계에 우뚝 선 선진강국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앙코르방송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책으로도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대국굴기는 중화(中華)사상과 맥이 닿아 있다. 중화사상은 한마디로 자신들이 온 천하의 중심이면서 가장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선민의식이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그들의 선민의식은 확연히 드러난다. 그들은 한족 이외는 모두 오랑케 등으로 지칭하면서 야만족으로 취급했다.

중화사상에 대한 중국인들의 신념은 다시 굳어지고 있다. 그들이 설명하는 배경은 이렇다. 중국에서 발달한 문명이 인도를 거쳐 페르시아로 이동하고,유럽으로 건너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일구어 낸 뒤,영국에서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이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열매를 맺었는데 이제는 다시 태평양을 건너 중국으로 돌아올 순서라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중국은 올림픽 개막식 공연에서 중화부흥의 드라마를 펼쳐 보였다. 세계문명을 뒤바꾼 나침반과 종이,화약,인쇄술의 4대 발명품을 강조하더니,실크로드와 뱃길도 자신들이 열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무엇보다 문화콘텐츠를 과시하기 위해 1만4000여명이 동원된 지상 최대의 개막식은 TV를 시청하는 세계인들을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부흥의 꿈을 기필코 이루겠다는 각오가 번득였다.

그런데 마음 한편은 개운치 않다. 혹여 중화사상이 그들의 비뚤어진 애국심으로 포장되지나 않을까 해서다. 느닷없이 제주도 남쪽의 이어도 영유권을 시비 걸고 나선 것도 마음에 걸린다.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은 대국굴기의 덕목이기도 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