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뉴비틀,아우디의 TT를 따라잡으려면 10년,20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획기적인 디자인 개발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

일본 닛산자동차 샌디에이고 디자인본부에서 미니밴 '포럼'을 디자인하는 등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맹활약 중인 한국계 자동차 디자이너 조엘 백씨(28ㆍ한국명 백철민)를 지난 주말 서울 청담동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그는 휴가차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올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닛산이 유일하게 출품한 컨셉트카인 '포럼'은 촌스럽고 투박한 기존 미니밴을 탈피한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미니밴도 충분히 예쁠 수 있다"는 생각으로 "B필러(차량 옆면의 두 유리창 사이 기둥)를 과감히 없애고 회전가능한 2열 좌석과 슬라이딩 도어를 적용한 색다른 미니밴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방송사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아버지를 따라 5살 때 미국에 건너간 그는 초등학교 시절 미술학원에 걸려있는 자동차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세계적 자동차 디자인대학인 CCS(college for creative studies)를 졸업한 뒤 미국 샌디에이고의 닛산자동차 미국 디자인 총괄센터(NDA)에서 4년차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그는 포럼을 통해 일약 유명세를 탔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은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를 소개하면서 그를 함께 언급했다.

그는 "경기 침체와 고유가가 맞물리면서 크라이슬러,GM,포드 등 미국 '빅3' 업체가 위기에 빠지는 등 전세계 자동차 시장이 격변기를 맞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과감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차별화를 꾀해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씨는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연비 개선과 원가 절감에 효과적인 차 디자인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며 "자동차 디자이너에겐 어려운 도전이자 숙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소비자들은 지금까지 차를 살 때 성능과 예산을 가장 중시했지만 수입차 점유율이 6%를 넘어서면서 독특한 디자인의 수입차가 여럿 소개되면서 무게중심이 디자인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기아자동차의 '로체 이노베이션'의 폭발적 인기가 이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차가 세계 시장에서 '값싼 차' 이미지를 탈피하려면 과감하고 혁신적인 디자인 개발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백씨는 해외에서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향후에 현대ㆍ기아자동차,GM대우 등 국내 자동차 회사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