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개혁이 좌초 위기에 몰린 가장 큰 이유는 청와대의 정치적 뒷받침이 사라졌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공기업 민영화로 거둘 수 있는 90%의 긍정적인 효과보다 10%의 부작용 우려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게 관료들이다. 이럴 때 청와대가 "내가 책임질테니 꼭 할 것은 하라"는 식으로 정치적인 책임을 약속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각계 의견을 수렴해 반발을 최소화하라"는 지침까지 내려갔으니 과단성 있는 정책 추진이 어렵다는 것이다.

청와대 차원의 공기업 개혁 민간 자문단 모임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낙마한 뒤 청와대가 자문단을 소집한 적이 한번도 없다"며 "대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주무 부처 의견 수렴'이었다"고 전했다. 각 부처는 소관 공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 할 수밖에 없는데 청와대가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공'을 각 부처에 넘기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애당초 국민을 설득하는 방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공공부문 운영 방향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었다는 것이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공기업을 보조해가면서 비효율적이지만 값싼 서비스를 유지하는 게 옳은지 아니면 당장 요금이 오르더라도 시장 기능에 맡겨 장기적인 효율을 추구하는 게 옳은지 국민에게 선택하도록 했어야 한다"며 "공기업의 비리를 드러내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에 '내부 경영 효율화'라는 소프트웨어 개혁으로 돌아설 여지를 남겨뒀다"고 평가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