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세계 1위의 조선업체로 거듭나기까지는 수많은 '조선 맨'들의 땀과 눈물이 서려 있었다. 정주영 회장의 진두 지휘 아래 24시간 장화를 신고 조선소 건설 현장을 누볐던 이들만 수천여 명.그 중 한 사람이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인 삼전기술검사㈜의 장영욱 사장(62)이다.

장 사장은 울산조선소 착공 이듬해인 1973년 당시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98년 인사ㆍ노무 담당 전무를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났다. 25년 동안 현대중공업의 탄생과 신화를 모두 지켜본 것이다. "말도 마세요. 조선소 건설 당시엔 출근길마다 항상 길이 달랐습니다. 울산 방어진 일대가 조선소 건설로 천지개벽하면서 자고 일어나면 길이 바뀌어 있었으니까요. 도크 건설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전쟁터였죠.현장에서 그냥 먹고 살았어요.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장 사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산업 역군'이란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울산조선소를 건설하면서 국내 산업의 기반을 일궈 냈다는 자부심 때문일 게다.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했지요. 한 달에 두 번 정도 쉬었는데,난 갈 데가 없어서 다시 조선소 현장에 나와 놀았어요. 장화를 신고….밤에는 오징어를 안주로 소주 한 잔씩 했죠."

술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장 사장은 감회에 젖은 듯 목이 메었다. "방어진 쪽에 소나무 숲을 지나면 울기 등대란 곳이 있습니다. 직원들과 맥주 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며 '파이팅'을 외쳤던 곳이죠.근데 어느 날 밤에 정주영 회장이 불쑥 찾아왔어요. 울기 등대 앞으로.오자마자 술을 따라 주시더니,냅다 씨름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한밤중에 씨름,팔씨름 엄청나게 했습니다. 그렇게 조선소 만들었어요. "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는 질문에 장 사장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1987년 당시 인사ㆍ노무 담당 임원이었던 그는 극심했던 노사 분규를 떠올렸다. "노조가 회사 사무실 점거하고 크레인에 올라가는 건 기본이었죠.제가 납치된 적도 있었으니까. 몇 년을 그랬어요. 당시엔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

이후 현대중공업 노조는 조금씩 달라졌다. 노사 상생 없이는 세계 1위를 지켜 내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현대중공업은 1995년부터 올해까지 14년째 무분규를 이어 오고 있다. 민주노총에서도 탈퇴했다. 지난해에는 노사화합 선언문도 발표했다.

장 사장은 마지막으로 현대중공업 후배들에게 부탁을 남겼다. "세계 시장에서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죠.무엇보다 노사 안정을 바탕으로 지금처럼 계속 1위를 유지해야 합니다. 노사 화합이야말로 우리나라 모든 기업이 살아 남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