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밤 열린 올림픽 개막식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나흘이나 지났지만 개막식 공연에서 울려퍼진 북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중국의 대표적 거장인 장이머우가 만들어낸 특별한 색채와 상상력도 그렇지만 부드러움과 격렬함,소리와 빛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농축된 중국의 5000년 역사를 길이 147 m의 대형 전자 두루마리에서 풀어내던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되씹어볼수록 허전해진다. 초대형 퍼포먼스가 미래가 아닌 과거에 천착해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 중국은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다른 민족을 '오랑캐'라고 불렀다. 그 오만한 당당함이 중화(中華)의 본질이다. 이번 개막식에서 중국이 미래 인류에게 어떤 공헌을 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는 없었다. 강성대국 중국은 있었지만 미래의 세계 리더는 보이지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우리 사는 세상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라며 인류 공통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모습도 없었다.

중국의 강함과 그 역사의 화려함이 강조된 이유는 뭘까. 정말 서방세계에 중국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답은 그 반대인 것 같다. 바깥 세상보다는 중국 내부에 던지는 메시지가 더 크다는 느낌이다.

자본주의를 채택한 공산당.이것이 현재의 중국 체제다. 공산당은 이념적으로는 만민평등,정치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기본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사실상 사회주의를 버렸다. 공산당 독재만이 남아 있다. 사회주의를 버린 공산당이 집권하기 위해선 그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올해 말로 30년을 맞이하는 개혁개방은 훌륭한 명분이었다. 고된 혁명과 지독한 가난의 고통을 보상받기 위해 사회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빈부격차라는 반갑지 않은 결과가 필연적으로 수반됐다. 빈부격차는 집단 시위를 유발시키며 공산당 정권을 위협할 수도 있는 뇌관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나온 또 다른 아젠다가 '중화의 부활'이 아닌가 생각된다. 경제적 발전을 바탕으로 이젠 강성 대국의 길로 가자는 것.과거 세계를 호령했던 한ㆍ당 시대의 영화를 재현하자는 게 중화의 부활이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13억 중국인들에게 던져진 메시지다.

물론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를 버렸건 아니건,1당 독재를 하건 말건 간에 모든 사람이 다 잘먹고 잘 산다면 시비를 걸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강성대국을 지향하는 중화주의는 민족주의를 자양분으로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번 올림픽에서 드러난 중국의 민족주의는 섬뜩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티베트의 인권문제를 들어 가장 먼저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을 선언한 프랑스는 불매운동과 프랑스 관광 거부라는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불참 의사를 번복해야 했다. 쓰촨성 대지진과 올림픽은 'I love china'라는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새로운 '인민복'으로 만들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쉽게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고구려 역사를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고,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이어도를 자국 영토라고 우기는 게 중화주의라면 정말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닐까.

조주현 베이징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