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련 < 연세대 교수ㆍ경영학 >

엊그제 한국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전하는 우리 선수들을 향한 전 국민의 환호 소리가 폭염보다 더 뜨거웠다. 아침에 수영에서 한국 최초로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저녁에 여자 양궁팀이 비바람과 중국인들의 일방적 응원을 극복하고 6회 연속 올림픽 제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그 외에도 계속 베이징에서 이어지는 낭보는 무더운 날씨뿐만 아니라 침체된 우리 경제 탓에 민생고를 겪고 있는 서민들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우리는 스포츠를 단순히 하나의 카타르시스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 치르는 행사이므로 그 열기가 식었을 때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관심을 잃게 된다. 하지만 이젠 스포츠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스포츠는 한 국가의 레저 수준을 말해 줄 뿐만 아니라 한 나라 경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으며 국가 마케팅에도 이용될 수 있다.

신궁이란 명성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킨 여자 양궁 단체전을 예로 들어보자.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했을지 모르지만 대회에서 한국팀은 물론 상대팀이었던 중국까지도 'SAMICK'이라는 한국 삼익스포츠의 활을 사용했다. 우리 기업이 만든 활과 그 브랜드가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에게 광고되고 있었던 셈이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의 많은 스폰서 중에서 삼성전자는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과 더불어 중국대표팀 후원을 통해 경쟁이 치열한 중국에서의 브랜드 입지를 강화했다. 한편 올림픽 공식 후원을 하지 않으면서도,올림픽 마케팅을 하는 회사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그 예로 박태환 선수를 광고모델로 기용한 SK텔레콤과 국민은행을 들 수 있다. 이 두 브랜드는 국내 시장의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인지도 면에서 우위를 갖게 되고 올림픽 특수를 누리게 됐다. 지난해 전 세계의 스포츠 후원 규모가 300억달러가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스포츠 마케팅은 태동 단계에 있다. 뒤집으면 아시아 스포츠 마케팅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성장 잠재력이 큰 산업이다.

이처럼 스포츠는 우리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우리는 그 중요성에 상응하는 투자를 하고 있는지도 재검토해 보아야 한다. 박태환 선수의 승리는 상당 부분 박 선수의 뼈를 깎는 노력에서 비롯됐지만 그를 오랫동안 지도한 노민상 코치를 포함한 많은 스태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듯 스포츠의 성과는 단순히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박 선수의 지구력과 스피드 향상에는 많은 과학적인 연구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 양궁이나 쇼트트랙이 세계 정상을 차지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 운동들을 위한 체계적이며 전문적인 노하우가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박태환 선수나 김연아 선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이 넘볼 수 없었던 종목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들에게 우리가 관심과 후원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수영이나 피겨스케이팅이 더 성장하려면 그 운동의 저변확대를 위한 좀더 대대적인 인프라 구축이 있어야 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우리 모두에게 생소했던 프로골프에서 박세리 선수가 혜성처럼 세계 스타로 부각됐다. 당시 그를 지켜보면서 영감을 받은 수많은 어린 한국 소녀들,이른바 '박세리 키즈'가 올해 미국 LPGA의 메이저 대회를 거의 휩쓸고 있다. 한국 스포츠계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금메달 획득 같은 단기적 성과 추구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스포츠 기반을 지속적으로 구축하는 일이 먼저다. 그렇게 할 때만이 제2,제3의 박태환과 김연아가 탄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