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남현희, 4초를 못 버티고… 막판 역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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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펜싱 첫 메달
한국 여자 펜싱의 간판 남현희(27·서울시청)가 여자 펜싱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은메달을 땄다.
남현희(4번 시드)는 11일 베이징 올림픽그린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발렌티나 베잘리(2번 시드)를 만나 선전했지만 5-6으로 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현희는 한국 펜싱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딴 여자 선수가 됐다.
한국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자 플뢰레의 김영호가 금메달을 획득한 적이 있지만 여자 선수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한 이후 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남현희는 세계적 선수로 성장했지만 펜싱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994년 성남여중에서 처음 칼을 쥔 남현희는 성남여고 3학년이던 1999년부터 처음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면서부터 실력과 관계없는 좌절을 맛봐야 했다. 당시 대한펜싱협회는 여자 플뢰레 대표로 4명을 뽑는다고 했지만 작은 키(155㎝)의 남현희가 4강에 들자 대표 선발전을 다시 치렀고 두 차례 선발전에서 이긴 뒤에야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 뒤에도 불운은 계속됐다. 4명이 뽑히기로 한 대표팀에는 5명의 선수가 나와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대표팀에서 나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따리를 싸야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무릎부상이었다. 이후 한체대에 다니며 심재성 현 여자 에페 국가대표 코치의 도움을 받아 실력을 키워 2001년 다시 국가대표에 들어가 여자 플뢰레의 간판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2005년 '쌍꺼풀 성형수술 파문'이 터졌다. 성형수술 후유증 때문에 국가대표 훈련을 빠졌다는 이유로 국가대표 자격 정지가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몇 개월간 심한 마음 고생을 겪은 끝에 다시 칼을 잡은 남현희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르며 위기를 딛고 일어났다. 2007년 한국 여자 플뢰레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로 도약해 실력을 증명했고 지난 5월에는 도쿄 그랑프리 3년 연속 금메달의 위업을 달성했다.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건 남현희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증명하듯 '악바리 근성'을 갖췄다. 1999년 선수촌에 입촌한 뒤 선발전을 거쳐 대표 5명 가운데 한 명을 탈락시킨다는 이야기를 듣자 선배들과 연습하면서도 일부러 자신의 실력을 감췄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키가 작은 대신 빠른 스피드와 순발력을 앞세운 기술을 찾아낸 것이나 올림픽을 앞두고 골반 부상의 고통을 견뎌낸 힘도 이 같은 근성에서 나왔다.
남현희는 2012년 올림픽을 다음 목표로 잡고 있다. 이처럼 선수생활을 연장하기 위해 남현희가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몸관리를 하고 있다고 주변사람들은 전한다. 남현희는 "세계 1위 선수에게 도전해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아쉽기도 하지만 은메달에 만족한다"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한국 여자 펜싱의 간판 남현희(27·서울시청)가 여자 펜싱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은메달을 땄다.
남현희(4번 시드)는 11일 베이징 올림픽그린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발렌티나 베잘리(2번 시드)를 만나 선전했지만 5-6으로 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현희는 한국 펜싱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딴 여자 선수가 됐다.
한국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자 플뢰레의 김영호가 금메달을 획득한 적이 있지만 여자 선수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한 이후 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남현희는 세계적 선수로 성장했지만 펜싱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994년 성남여중에서 처음 칼을 쥔 남현희는 성남여고 3학년이던 1999년부터 처음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면서부터 실력과 관계없는 좌절을 맛봐야 했다. 당시 대한펜싱협회는 여자 플뢰레 대표로 4명을 뽑는다고 했지만 작은 키(155㎝)의 남현희가 4강에 들자 대표 선발전을 다시 치렀고 두 차례 선발전에서 이긴 뒤에야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 뒤에도 불운은 계속됐다. 4명이 뽑히기로 한 대표팀에는 5명의 선수가 나와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대표팀에서 나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따리를 싸야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무릎부상이었다. 이후 한체대에 다니며 심재성 현 여자 에페 국가대표 코치의 도움을 받아 실력을 키워 2001년 다시 국가대표에 들어가 여자 플뢰레의 간판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2005년 '쌍꺼풀 성형수술 파문'이 터졌다. 성형수술 후유증 때문에 국가대표 훈련을 빠졌다는 이유로 국가대표 자격 정지가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몇 개월간 심한 마음 고생을 겪은 끝에 다시 칼을 잡은 남현희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르며 위기를 딛고 일어났다. 2007년 한국 여자 플뢰레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로 도약해 실력을 증명했고 지난 5월에는 도쿄 그랑프리 3년 연속 금메달의 위업을 달성했다.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건 남현희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증명하듯 '악바리 근성'을 갖췄다. 1999년 선수촌에 입촌한 뒤 선발전을 거쳐 대표 5명 가운데 한 명을 탈락시킨다는 이야기를 듣자 선배들과 연습하면서도 일부러 자신의 실력을 감췄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키가 작은 대신 빠른 스피드와 순발력을 앞세운 기술을 찾아낸 것이나 올림픽을 앞두고 골반 부상의 고통을 견뎌낸 힘도 이 같은 근성에서 나왔다.
남현희는 2012년 올림픽을 다음 목표로 잡고 있다. 이처럼 선수생활을 연장하기 위해 남현희가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몸관리를 하고 있다고 주변사람들은 전한다. 남현희는 "세계 1위 선수에게 도전해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아쉽기도 하지만 은메달에 만족한다"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