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주재원들은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 한국 본사는 중국 대륙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소속으로 주타이베이 대표부에 나온 강명수 상무관은 3년 임기를 마치고 이달말 복귀하지만 후임이 없다. 경제.통상을 맡던 그 자리를 없애고 정무 담당이 겸직토록 했다. 자원외교를 강화하기위해 공관을 늘리면서 대만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외교관 자리를 줄인 탓이다. 삼성전자도 올해 대만에 지역 전문가를 보내지 않았다.

마잉주 총통 취임후 대만이 대륙과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중요성이 더 커지는데도 한국만 그같은 변화에 무심한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주재원들 사이에 크다. 삼성전자 타이완법인의 최철 부장은 "대만과 중국간에 인력이동이나 물류가 자유로워지면 대만이 더 힘을 받을수 있다"며 "중국으로 대만의 기술이 들어갈수록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대만이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비즈니스 여건은 한국기업에 험난하기 짝이 없다. 대만은 한국 처럼 일제 식민지를 거쳤지만 일본에 대한 인식은 형제처럼 우호적이다. 현대자동차의 임형택 부장은 "일본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신앙에 가까운 수준이다"고 말했다. 실제 자동차 시장의 86% 를 일본차가 차지하고 있다. 아예 일본말로 TV 광고를 하는 기업들도 적지않다. 나이 든 택시기사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노래에 맞춰 흥얼거린다. 소고, 미쓰코시 같은 일본 백화점에 젊은이들이 북적댄다. 한국 백화점은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TV도 단연 소니다. 그런 시장에서 LG전자가 현대자동차와의 공동 마켓팅등을 활용해 파나소닉을 제치고 TV시장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강명수 상무관은 평가했다.

그같은 노력으로 대만은 한국에 5대 교역상대국으로 부상했다. 유럽 국가중 한국과 교역이 가장 활발한 독일과의 무역량 보다 배나 많은 230억 달러(2007년 기준) 어치를 주고 받았다. 일본에 비하면 훨씬 덜 우호적인 인식에 비하면 교역량이 꾸준히 늘어난 셈이다. 효성의 강담규 사장은 "대만 지식인들 사이에 1992년 단교 조치에 비판적인견해가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영자신문인 차이나포스트는 마 총통을 비판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보다 결코 나을 게 없다"는 투로 한국을 비꼬는등 언론의 한국 인식도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두 나라는 세계 시장에서 한치의 양보없는 다툼을 벌이고 있다. 두 나라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주요 20개 품목중 14품목이 경쟁관계다. 집적회로 LCD 석유제품 사무용기기등이 그 대상이다. 마 총통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는 대만기업의 중국 투자확대와 해외에 진출한 대만기업들의 본국에 대한 투자확대로 이어질 조짐이다.

그 파장을 알아보기위해 한국기업의 대만 지사장들과 KOTRA 타이베이 무역관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일단 걱정이 앞섰다. 대우인터내셔널의 김기윤 지사장은 "대만과 중국이 소원했을때는 한국의 역할이 있었지만 둘이 가까워지면서 직접 상대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민호 무역관장도 "일단 부정적인 요인"이라며 "하루 빨리 대만과 성공적인 협력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말했다. 오상식 주타이베이 대표부 대표는 "대만은 과도기에 들어섰다"며 "중국과 어떤 식으로 협력이 전개될지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걸림돌은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극심한 중국 눈치보기다. 1992년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은 후 대만 관련 모든 의사결정의 제1 우선순위에 중국 변수를 놓는다. 한국 선물회사가 대만 진출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정부간에 금융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되지 않아 추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업들도 중국을 의식하기는 마찬가지다. 얼마전 민간차원의 한.대만 경제협력위원회 참석차 대만을 방문했던 이기우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찍힐까봐 대만을 피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중국의 게임이나 소프트웨어, 무선통신시장등에 대만 기업과 함께 진출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주춤거리는 사이 범 중화 경제권은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홍콩과 한 몸이 된 중국이 대만과의 협력확대로 기술력을 높여 동남아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한국에는 달갑지 않은 변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박번순 연구전문위원은 "대만과의 경쟁에서 기회손실을 막기위해 한.중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하고 동남아에서도 경제적 외교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크 리야오 경제건설위원회 비서주임은"경쟁관계인 TFT-LCD도 올림픽이후 가격이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서로 협력할수 있지 않겠느냐"며 "경쟁과 협력으로 중국진출이나 무역확대를 꾀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잉주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환경기술도 협력가능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타이베이=고광철 부국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