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민 < 연세대 교수ㆍ경제학 >

독도 문제는 끝났는가. 독도 때문에 전국이 물 끓듯 하더니 부시의 방한 이후에는 관심사에서 멀어진 것 같다. 하기야 짜증나는 무더위에 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지 그런 문제를 계속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그렇다고 독도 문제가 끝난 것은 물론 아니다. 한국인이 냄비 식으로 끓다가 잊어버리는 사이 일본은 다시 뒤통수를 치고 나올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 지도층의 입장에서 독도 문제는 고립된 사안이 아니라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우경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런 일본의 우경화를 저지해야 할 승부처는 동아시아가 아니라 세계무대다. 그것은 이번 독도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에서 한국이 이겼다고 볼 수는 없다. 일본은 저변에 깔린 힘을 이용해 미국지명위원회로 하여금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설정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한국은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나 미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해결하게 했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앞으로 아프간 문제 등에서 미국에 빚을 진 셈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엉뚱한 짓을 하고 원상회복했는데,한국은 빚을 졌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의 소모(消耗)가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저변으로부터 파고들어 자기편을 만드는 일본의 능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것이 단기적 투자만으로 될 수는 없다. 외국의 유력한 인사들에게 체계적으로 일본을 알리고,학생들에게 장학금 주어서 일본에서 공부하게 하고,돌아가서도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치밀한 작업이 있었다. 이런 일을 하는 주요 기관으로서 일본의 국제교류기금이 있다. 영어로는 그냥 '일본재단'(Japan Foundation)이다. 외국의 동아시아 관련자의 커리어를 추적해 보면 많은 경우 일본 국제교류기금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도 일본 국제교류기금과 비슷한 일을 해 보자고 만든 것이 국제교류재단이다. 영어로는 '한국재단'(Korea Foundation)이다. 한국이 장기적으로 독도 문제뿐 아니라 일본의 우경화와 맞서려면 국제교류재단이나 그 유사한 기구로써 외국의 학계나 정ㆍ관계의 저변을 파고드는 것이 결정적이다.

그런데 그 국제교류재단이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2010년부터 제주도로 옮겨간단다. 국제교류재단은 사업의 대부분을 외국 현지에서 벌이거나 초청한 외국 인사들을 상대하므로 수도권과 국제공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기관을 제주도로 옮겨서 제대로 업무 수행이 되겠는가. 일본도 지역균형발전 문제가 만만치 않지만 일본재단을 오키나와로 옮기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국제교류재단은 한 예일 뿐이다. 지난 정부의 178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사업에 비슷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는 설마 그대로 시행되기야 하겠냐고 생각하면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일단 상식을 벗어난 것은 가려서 바꾸리라고 기대해 왔다고 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런데 새 정부는 촛불 한 번 맞고 나더니 그런 일도 안 하기로 한 것 같다. 그것도 잘못된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가 한 것 중에 잘못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저히 못 고칠 것 같았던 정경유착 고리를 그만큼 끊었고,결과야 어떻든 양극화를 해결하려는 의지만큼은 열심이었다. 새 정부가 그런 쪽에서는 후퇴를 하면서 지난 정부가 저질러 놓은 잘못을 고칠 생각도 없다면 무엇으로 남은 4년 반을 끌고 갈 것인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독도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