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장승민씨(36)는 최근 휴대폰과 초고속인터넷을 함께 가입하면 요금을 최고 50% 깎아준다는 결합상품 출시 소식을 듣고 이에 가입하려다 포기했다. 가족끼리 통신 상품을 묶기만 하면 할인해 준다는 설명과 달리 가입제한 조건에 걸려 가족 중 여러 명의 요금상품을 바꿔야 해 중간에 단념한 것.

통신사들의 복잡한 요금 상품 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요금을 깎아주는 결합상품을 내놓았지만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가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다. 게다가 100여종의 요금 상품이 쏟아져 나와 어떤 상품이 좋은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최근엔 통신서비스 이용약관을 소비자가 쉽게 볼 수 없도록 방치하는 등 통신업체들이 소비자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존 가입자는 왕따?

소비자들이 유.무선 통신상품을 함께 묶는 결합상품에 가입할 때 부딪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까다로운 가입 조건이다. KTF는 CGV.이마트.주유할인 등 제휴형 할인 요금제에 가입한 사람들을 결합상품 할인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미 영화나 할인점,주유소 등에서 할인 혜택을 얻었기 때문에 결합상품 가입에 따른 중복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

LG텔레콤도 망내무료 요금제를 비롯,약정할인.항공마일리지.G마켓 등 타 할인프로그램 가입자들에게 결합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 SK텔레콤은 상대적으로 예외 대상이 적지만 T끼리 플러스 할인,커플 요금 계열 가입자 등에 제한을 두고 있다. 기존 가입자라도 여러 상품을 묶어 가입하면 할인혜택을 더 주겠다던 결합상품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방향이다.

통신업체 관계자는 "결합상품 가입자는 기존 가입자에 비해 이탈 확률이 낮아 통신사의 비용을 절감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며 "결합상품 할인은 이로 인한 비용 감소분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거라 기존 제휴형 할인을 제외시킬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결합상품에 가입할 때 일정기간 다른 통신사로 바꿀 수 없도록 한 의무약정 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설정한 것도 문제다. KT-KTF는 가입자가 최고 50%의 할인 혜택을 얻으려면 휴대폰과 초고속인터넷 모두 3년 약정을 하도록 조건을 붙였다. 약정을 하지 않으면 할인폭이 5~10%에 불과하다. LG텔레콤-LG파워콤은 초고속인터넷 3년 약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합상품에 가입하지도 못한다.



◆요금상품 종류 미국의 5배

요금 상품이 너무 많은 것도 소비자들을 혼란시키는 요인이다. KTF는 신규 가입이 제한된 과거 요금 상품을 제외하고도 118종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SK텔레콤과 LG텔레콤도 각각 69종,32종의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이동통신사들이 평균 20여종의 상품을 운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최대 5배나 많다.

요금상품이 많은 것은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는 의미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올초 SK텔레콤과 LG텔레콤이 내놓은 T표준과 신표준 요금이다.

이들 상품은 기존 표준상품에 비해 기본료를 1000~1100원 내렸지만 무료 통화 혜택이나 통화 할인 시간 혜택도 덩달아 줄였다. 기본료가 줄어 겉으로는 크게 할인받는 것 같지만 한 달을 사용해도 기존 표준 요금에 비해 할인받는 금액은 T표준이 월 36원,신표준이 246원 쌀 뿐이다.

이통사 대리점 관계자는 "100여종에 달하는 요금제 중 소비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20~30종에 불과하다"며 "이통사들이 겉으로 요금을 싸게 보이려는 불필요한 경쟁을 하다 보니 명목뿐인 요금상품만 늘어난 셈"이라고 지적했다.

◆통신약관 '못찾겠다 꾀꼬리'

통신업체들이 서비스 계약의 중요 사항을 정해놓은 이용약관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는 관행도 문제다.

방통위는 12일 이용자들이 약관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업계에 통보했다. 이에 앞서 방통위는 직원 20명을 대상으로 통신사 홈페이지에서 이용약관을 찾는 체험 이벤트를 실시했다. 하지만 20~30분 동안 약관을 하나도 찾지 못한 직원도 있었다. 이용자들이 약관을 찾기 어렵고 약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각종 분쟁도 늘어날 소지가 높다.

방통위는 앞으로 통신업체가 홈페이지에 약관을 게시할 때 메인화면 하단에 약관 메뉴를 고정 배치하고 메뉴에는 해당 사업자의 모든 서비스 이용약관을 함께 게시하도록 했다.

최성호 방통위 통신이용자보호과장은 "AT&T 등 외국 통신사들은 이용약관을 초기화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국내 통신사 홈페이지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아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