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양궁스타들 사로잡은 국산 활 "한국 독주에 삼익 브랜드도 金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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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낮 12시께 베이징 올림픽공원 내 양궁 경기장.태극기를 흔들며 한국 응원단이 경기장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남자 개인전 예선 중 오전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기분 좋은 승리를 따 낸 뒤였다. 빠져 나오는 응원단에 섞여 주변 사람들에게 연신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청바지를 입은 중년 신사가 있었다. 주인공은 삼익스포츠의 이봉재 대표.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128명의 전 세계 선수 중 50명 이상의 손에 들린 활의 브랜드가 바로 SAMICK(삼익)이다. 이 대표는 과녁이 아닌 활 시장을 석권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셈이다.
"대표 선수 이전부터 성장 과정을 죽 지켜봐 온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니 꼭 내 자식이 성공한 것처럼 기쁘다"는 이 대표는 1990년부터 활 생산이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당시 활을 생산하던 삼익피아노에 활 부품을 납품하다가 아예 활사업 부문을 인수해 삼익스포츠라는 활 전문 회사를 만들어 버린 것.
한국 대표팀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 내로라하는 나라의 대표팀들이 삼익의 활을 애용하는 이유를 묻자 "높은 원가에 적은 마진이 이유"라며 웃었다. 그는 삼익의 활은 탄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데 이는 다양한 재질의 원재료를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데 비용을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인 활은 손잡이를 알루미늄으로 만들지만 삼익은 카본 소재를 사용한다. 200여 가지 원재료를 조합해 최상의 제품을 만드는 일을 18년간 반복해 왔고 한 번도 투자비가 아깝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원가만 보자면 지금보다 50%는 비싸게 팔아야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며 "내 욕심은 세계 최고의 활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익의 활을 세계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만 해도 한국 남녀 대표팀조차 외국산을 사용했다. 처음 올림픽 무대에 얼굴을 내민 것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김수녕 선수가 삼익 제품을 사용하면서부터.김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서 외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삼익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다. 지난 아테네올림픽 때는 이탈리아의 마르코 갈리아조가 삼익의 활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출전 선수 중 80%가 미국 제품을 썼다.
이 대표는 "갈리아조는 아테네올림픽 이전부터 활을 지원해 달라고 했는데 괜히 외국 선수를 돕는다는 소릴 들을까 봐 조심스러웠다"며 "갈리아조가 삼익의 활로 우승한 뒤 스폰서는 아니지만 활을 지원해 주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번 남녀 단체전에서 대부분 선수들이 삼익 브랜드의 활을 들고 나온 것이 중계되면서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이메일 문의가 크게 늘어나 다음 런던올림픽 때는 삼익 브랜드를 훨씬 더 많이 볼 것 같다"며 웃었다.
현재 세계 활 시장은 미국 호이트사가 50%가량을 차지하고 삼익 등 국산 제품이 나머지 50%를 점유하고 있다. 삼익은 종업원 65명 정도의 중국 칭다오공장에선 레저용 활을,15명 정도의 정예 부대가 일하는 한국 공장에선 선수용 활을 만든다. 작년 매출은 50억원 정도.1990년 처음 공장을 시작할 때의 20억원에서 꾸준히 성장했다.
이 대표는 한국은 물론 외국 선수 중에서 어려운 형편의 선수를 돕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에도 비록 예선 탈락했지만 삼익의 지원을 받아 연습한 포르투갈 선수가 출전했었다. 이 대표는 "최고의 시설을 갖춘 양궁 연구소를 만드는 게 꿈"이라며 "삼익은 가장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 선수들은 최상의 자세를 과학적으로 찾아낼 수 있도록 첨단 연구소를 설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오광진/임기훈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