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요즘 이 업소의 김 모(47) 사장은 가게 문 열기가 두렵다.

한달 이상 거래 실적이 없는데다 방문객이나 문의전화도 크게 줄어든 때문이다.

김 사장은 "아무리 여름 비수기라지만 이렇게 거래 시장이 조용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너무 손님이 없다보니 간혹 전화벨만 울려도 반가울 정도"라고 말했다.

서초구 잠원동 중개업소의 이 모(39) 사장도 마찬가지다.

이 사장은 요즘 사무실은 부인에게 맡겨놓고 일주일에 두세번씩 수도권 개발 예정지를 찾아 다닌다.

이 사장은 "일이 없어 놀고 있는 게 한 달이 훨씬 넘었다"며 "응대할 손님이 없는데 무작정 사무실만 지키는 것보다 견문을 넓히고 사업 아이템도 찾아보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최근 아파트 매매시장이 마비됐다.

팔 사람도 살 사람도 찾기 힘들다.

계절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중개업소가 느끼는 체감 경기는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근 거래 침체를 경제위기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추가 미분양 및 재건축 대책과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 세제 완화에 대한 예고만 해놓고 실제 행동에는 옮기지 않는 바람에 거래 침체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집을 팔 사람은 규제나 세제 완화 기대감으로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가격을 깎지 않고 있고 집을 살 사람들은 정부 대책 수위를 봐가며 매수 타이밍을 결정하겠다며 관망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인 셈이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지난 달 규제완화 기대로 급매물 몇 개가 팔리더니 후속대책이 없어 다시 거래가 얼어붙었다"며 "집을 살 사람이나 팔 사람이나 모두 정부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격이 내린 것도 아니다.

이 중개업소 사장은 "거래가 안돼도 기대감 때문에 집주인도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라며 "예전보다 급매물은 더 줄었다"고 덧붙였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일대도 마찬가지다.

S공인 대표는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한 게 두달이 넘었다"며 "집을 팔려고 했던 사람도 종부세.양도세 완화 계획을 듣고는 매물을 거둬들였고, 매수자들은 세제 완화후 나오는 매물을 잡겠다며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 반포동의 K공인 대표는 "아무리 여름 비수기라지만 요즘 매매 거래나 문의 전화량은 2006년의 50-60%, 지난해의 60-70% 수준밖에 안된다"며 "모두 다 정부 '입'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강북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동대문구 장안동의 R공인 관계자는 "예년과 비교할 때 요즘 매매시장은 최악의 상황"이라며 "집을 팔아야 할 사정이 있음에도 (가격이 오르거나 세제완화 혜택을 기대해) 기다리고, 사고 싶어도 (가격이 하락할까봐) 망설이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거래 시장의 숨통을 틔워주려면 정부가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간보기'식으로 실행되지도 않을 대책을 흘려 불필요한 기대감을 갖게 하고, 시장을 마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서둘러 적정 수준의 대책을 내놓던지, 아니면 철회하던지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s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