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이룬세계1위…16년지켜온패권…
‘반도체韓國’ 질주는 계속된다



1990년 4월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장(현 반도체총괄 사장)에게 특명이 떨어졌다. '일본보다 먼저 64Mb(메가비트) D램을 개발하라'. 당시 세계 반도체 시장은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기업들의 독무대였다. 삼성전자는 그 무렵 도시바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16Mb D램 개발을 앞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세계 무대에선 '변방'으로 취급받았다. 권 부장을 주축으로 개발팀이 꾸려졌다. 하지만 일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술 개발에 막 착수했을 무렵 일본 히타치가 64Mb D램 시제품(샘플)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히타치보다 하루라도 먼저 완제품을 내놔야 하는데…. ' 개발팀은 분초를 다투는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했다.

시행 착오를 반복하며 밤샘 작업에 매달리기를 2년여. 1992년 9월25일 '삼성전자,세계 최초로 64Mb D램 개발'이란 한국발(發) 뉴스 하나가 세계 반도체 업계를 뒤집어놓았다. 반도체 주도권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64Mb D램 개발로 반도체는 일약 '나라의 보물'과도 같은 사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상황은 180도 달랐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3년. 이병철 당시 삼성그룹 회장은 그해 2월8일 일본 도쿄에서 메모리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이 회장은 "증기기관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영국처럼 우리도 반도체로 세계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국내 경제계와 정부에서는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그럴만도 했다. 삼성전자는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지만,고작 시계와 흑백 TV에 쓰이는 집적회로(IC)나 만드는 수준이었다. 반면 선진국 기업들은 집적회로보다 1000배나 복잡한 D램을 이미 개발한 상태였다. 기술 격차만 20년. 선진국을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매년 1000억원 이상이 드는 천문학적인 투자자금도 문제였다. 1982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509억원.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사업에 1년치 수익의 두 배를 투입해야 하는 도박이었다.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대규모 투자가 잘못되면 국가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며 노골적으로 '반도체 망국론'을 폈다. 다른 기업들조차 "미국과 일본 기업도 힘겨워하는 반도체를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생산한다는 말이냐. 3년도 안 돼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이 회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반도체 사업진출 선언 직후 임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컴퓨터를 1t 생산하면 3억원의 부가가치가 생기지만 반도체를 1t 생산하면 13억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겠는가?"

모두의 우려 속에 그해 5월 삼성전자는 첫 프로젝트인 64Kb D램 개발에 착수했다. 64Kb D램은 미국과 일본의 몇몇 기업만이 개발에 성공한 첨단 반도체.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직면했다. 107명의 개발팀원 중 어느 누구도 D램을 만들어보지 않았던 데다 회로도조차 없었다. 결국 개발팀은 미국 마이크론으로부터 제공받은 64Kb D램을 완전히 분해해 회로도를 그린 끝에 그해 11월 64Kb D램을 만들어냈다. 선진국 기업들도 7∼8년 걸렸던 일을 단 6개월 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1984년 64Kb D램을 양산할 무렵 세계 반도체 시장의 공급과잉으로 D램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그해 초 개당 3.5달러였던 D램 가격은 1년 뒤 30센트까지 떨어졌고,1987년까지도 1달러를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1984~1987년까지 반도체 부문에서 1400억원의 누적적자를 냈다. 막 사업을 시작한 삼성그룹에는 치명타였다.

사업을 접어야 할지 계속할지를 고민해야만 하는 순간,이 회장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1984년부터 3년간 2000억원을 투입해 차세대 D램 개발과 새 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것. 공격적인 선행투자였다. 그의 결정은 옳았다. 1987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경기가 차츰 회복되자 삼성전자는 1988년 3600억원의 흑자를 올리며 기사회생했다. 자신감을 얻은 삼성전자는 64Kb D램에 이어 256Kb D램(1984년),1Mb D램(1986년),4메가 D램(1988년),16Mb D램(1990년)을 잇따라 개발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2년 64Mb D램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냈다.

첫 신화 달성 이후 삼성전자는 파죽지세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해 나갔다. 1985년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던 D램 시장에서 1992년 13.5%의 점유율로 사상 처음으로 일본 도시바(12.8%)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올해 1분기 시장점유율은 33.7%. 세계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D램 3개 중 1개는 삼성전자 제품인 셈이다.

D램 성공신화는 낸드플래시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1994년 뒤늦게 낸드플래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10년 만인 2003년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를 제패했고,올해까지 6년째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도체 성공 DNA'는 국내 다른 전자기업으로도 이식됐다. 삼성의 뒤를 이어 LG그룹(LG반도체)과 현대그룹(현대전자)은 1986년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진출, 7년 만인 1992년 세계 시장에서 각각 10위와 11위에 올랐다. 1999년 국내 대기업 간 '빅딜(사업 맞교환)' 과정에서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흡수·합병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이를 통해 하이닉스반도체라는 세계 2위의 반도체 기업이 탄생했다.

하이닉스의 가세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한국 천하'로 재편됐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D램 시장의 49.1%,낸드플래시 시장의 57%를 차지했을 정도다. 국가경제 기여도도 급격히 높아졌다. 20년 전인 1987년 5억달러도 채 안 됐던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작년 390억4600만달러로 80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 총수출(3714억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5%로 전 산업군을 통틀어 가장 높다.

무엇보다 반도체 신화는 한국 전자산업 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였다. 반도체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국내 전자산업계는 2000년대 들어 세계를 제패했다. 일본보다 10년 늦은 1994년부터 시작한 LCD패널을 2003년부터 삼성전자 및 LG디스플레이가 석권했고,소니와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이 주름잡았던 TV 시장도 2005년부터 한국 전자업체들이 평정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