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까지 한국은 반도체 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라디오와 흑백 TV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게 고작이었을 뿐 D램과 같은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할 기술이나 인력은 전무했다. 더군다나 미국과 일본의 쟁쟁한 전자기업들이 이미 10년 전부터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상태였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1983년 2월8일 일본 도쿄에서 메모리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모두가 '무모한 도박'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이루게 할 것"이라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기술력이 부족해 경쟁사가 이미 만들어 놓은 제품을 뜯어 보며 회로도를 그리기 6개월.삼성은 그 해 11월 첫 메모리 반도체인 64Kb(킬로비트) D램을 개발해 냈다. 그리고 반도체 사업 진출 10년 만인 1992년 9월25일 마침내 세계 최초로 64Mb(메가비트)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삼성은 올해까지 16년째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삼성의 뒤를 이어 하이닉스반도체가 가세하면서 반도체는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