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 본 대한민국 60년…수출품, 무연탄·오징어서 자동차·반도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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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얼음은 옛말…서울 평균기온 1.6도 올라
통계청이 건국 60주년을 맞아 14일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상 변화를 수치로 제시했다. 전쟁과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60년 대한민국 역사를 통계로 알아본다.
'여러분의 오줌은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입니다''유로키나제를 당신의 오줌으로''한 방울이라도 통 속에'.
1970년대 공중화장실에는 어디를 가나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사람의 오줌에서 추출하는 유로키나제는 중풍 치료제로 쓰였다. 당시로선 1㎏에 2000달러나 하는 고가 수출품이었다. 초·중·고교는 물론이고 예비군 훈련장,버스터미널 화장실에도 안내문과 오줌 수집통이 비치됐다.
수출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1960년대 초만 해도 수출품은 자연광물과 수산물이 대부분이었다. 철광석 중석 무연탄 흑연이 10대 수출품에 들어갔고 생사 오징어 활선어 돼지털 쌀 등이 주력 수출품이었다. 다람쥐 갯지렁이 뱀 메뚜기 뱀장어를 비롯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동식물은 죄다 수출품이 됐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 11위의 무역강국으로 변모했다. 무역 규모는 2007년 현재 7283억3500만달러까지 늘어나 60년 전인 1948년의 3167배 수준으로 올라왔다. 외환보유액은 1960년 1억5700만달러에서 2622억달러로 1670배 증가해 세계 6위의 외환보유국이 됐다.
종사자 5명 이상의 사업체 수는 1955년 8800개에서 2006년 11만9000개로 13.5배가 됐고,제조업 부문 종사자 수는 14.2배 성장했다. 1962년에 비해 조강 생산은 396배,자동차 생산은 2270배로 늘어났고,선박 건조량은 1970년의 1482배,반도체 생산량은 1980년의 181배가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 67달러에서 2007년 2만45달러로 늘어났고,국내총생산은 13억달러에서 9699억달러로 746배 증가했다. 1948년 58.3%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7년 2.5%로 떨어졌다.
60년 전 한강은 천연 얼음 공장이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40㎝가 넘는 두께로 얼음이 얼었고,그걸 잘라서 용산 서빙고와 동빙고에 저장해뒀다가 이듬해 여름철에 가게를 통해 판매했다. 1970년대에도 한강에서 전국빙상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얼어붙은 한강을 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한반도가 그만큼 더워졌기 때문이다. 서울의 평균 기온은 1948년 11.7도에서 2007년 13.3도로 1.6도 상승했다.
수명은 무척 길어졌다. 기대수명은 1970년 61.9세에서 2006년 79.2세로 17.3세 증가했고,중위 연령(전체 인구를 연령순으로 세울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은 18.5세에서 35.4세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인구는 1949년 2019만명에서 2007년 4846만명으로 2.4배 증가했다.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1952년 60명에서 2007년 22.9명으로 감소했다. 도로포장률은 1960년 3.7%에서 2007년 78.3%로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자동차 등록 대수는 1955년 1만8000대에서 2007년 1643만대로 913배 증가했다. 일반전화 가입자 수는 1949년 4만1000명에서 2007년 2313만명으로 564배 증가했다. 휴대폰은 10명 중 9명이 보유하고 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
통계청이 건국 60주년을 맞아 14일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상 변화를 수치로 제시했다. 전쟁과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60년 대한민국 역사를 통계로 알아본다.
'여러분의 오줌은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입니다''유로키나제를 당신의 오줌으로''한 방울이라도 통 속에'.
1970년대 공중화장실에는 어디를 가나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사람의 오줌에서 추출하는 유로키나제는 중풍 치료제로 쓰였다. 당시로선 1㎏에 2000달러나 하는 고가 수출품이었다. 초·중·고교는 물론이고 예비군 훈련장,버스터미널 화장실에도 안내문과 오줌 수집통이 비치됐다.
수출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1960년대 초만 해도 수출품은 자연광물과 수산물이 대부분이었다. 철광석 중석 무연탄 흑연이 10대 수출품에 들어갔고 생사 오징어 활선어 돼지털 쌀 등이 주력 수출품이었다. 다람쥐 갯지렁이 뱀 메뚜기 뱀장어를 비롯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동식물은 죄다 수출품이 됐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 11위의 무역강국으로 변모했다. 무역 규모는 2007년 현재 7283억3500만달러까지 늘어나 60년 전인 1948년의 3167배 수준으로 올라왔다. 외환보유액은 1960년 1억5700만달러에서 2622억달러로 1670배 증가해 세계 6위의 외환보유국이 됐다.
종사자 5명 이상의 사업체 수는 1955년 8800개에서 2006년 11만9000개로 13.5배가 됐고,제조업 부문 종사자 수는 14.2배 성장했다. 1962년에 비해 조강 생산은 396배,자동차 생산은 2270배로 늘어났고,선박 건조량은 1970년의 1482배,반도체 생산량은 1980년의 181배가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 67달러에서 2007년 2만45달러로 늘어났고,국내총생산은 13억달러에서 9699억달러로 746배 증가했다. 1948년 58.3%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7년 2.5%로 떨어졌다.
60년 전 한강은 천연 얼음 공장이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40㎝가 넘는 두께로 얼음이 얼었고,그걸 잘라서 용산 서빙고와 동빙고에 저장해뒀다가 이듬해 여름철에 가게를 통해 판매했다. 1970년대에도 한강에서 전국빙상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얼어붙은 한강을 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한반도가 그만큼 더워졌기 때문이다. 서울의 평균 기온은 1948년 11.7도에서 2007년 13.3도로 1.6도 상승했다.
수명은 무척 길어졌다. 기대수명은 1970년 61.9세에서 2006년 79.2세로 17.3세 증가했고,중위 연령(전체 인구를 연령순으로 세울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은 18.5세에서 35.4세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인구는 1949년 2019만명에서 2007년 4846만명으로 2.4배 증가했다.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1952년 60명에서 2007년 22.9명으로 감소했다. 도로포장률은 1960년 3.7%에서 2007년 78.3%로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자동차 등록 대수는 1955년 1만8000대에서 2007년 1643만대로 913배 증가했다. 일반전화 가입자 수는 1949년 4만1000명에서 2007년 2313만명으로 564배 증가했다. 휴대폰은 10명 중 9명이 보유하고 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