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인중개사 김창남씨(42)는 요즘 실업자 신세가 됐다. 며칠 전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K중개업소에서 일했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그만뒀다. 중개 실적에 따라 돈을 받아 왔지만 거래 공백이 몇 달째 이어지면서 버티기 힘들었다. 김씨는 "경험을 쌓은 뒤 중개업소를 차려 볼 욕심에 올초부터 출근했지만 단 한 건의 매매도 성사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 신도시 서현동의 김모 중개업자는 최근 급하게 은행 대출을 받았다. 매매는커녕 전세 거래마저 뚝 끊겨 두 달째 수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거래시장이 마비되고 있다. 여름 휴가철이 낀 계절적 비수기의 영향으로 보기에는 정도가 심하다. 팔 사람도,살 사람도 눈치만 볼 뿐 선뜻 나서지 않는다. 집주인들은 정부와 여당의 부동산 규제 및 세제 완화 방침에 대한 기대감에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집값도 내리지 않는다. 반면 수요자들은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뒤로 한 발 물러나 관망하는 중이다.

14일 국토해양부가 공개한 '7월 아파트 실거래가 자료'(신고일 기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거래 건수는 3만8804건으로 지난 4월부터 넉 달째 감소세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159건으로 작년 7월(4338건)보다 적었다. 강남 3개구(강남·서초·송파)의 경우 거래량(505건)이 올 들어 최저치였고 작년 7월에 비해 22.4%나 줄었다.

인천과 경기를 포함한 수도권 거래량(1만6590건)도 작년 동월(1만6645건)에 못 미친다. 다만 지방의 경우 올 들어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세제 혜택 등 각종 지원 덕분에 작년보다는 거래량이 많은 편이다.

이에 따라 서울 강남지역 중개업소들은 대부분 '개점 휴업' 상태다. 서초구 서초동 D부동산중개업소의 박모 사장은 "하루 종일 사무실을 지켜도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 날이 많다"며 "요즘 올림픽 경기 중계를 보는 재미로 하루를 보낸다"고 말했다.

인근 R공인 대표는 "집을 내놨던 사람들은 정부의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완화 방침이 알려진 뒤 매물을 거둬들였고 매수자들은 세제 완화 후 나오는 급매물을 잡겠다며 관망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강북권은 '거래 가뭄' 현상이 더 심하다. 강북권(14개구)의 지난달 아파트 거래량은 1736건으로 실거래가 신고제도가 도입된 2006년 1월(448건) 이후 가장 적었다. 총 4401건에 달했던 지난 4월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강북구 미아동 OK공인 관계자는 "4월만 해도 6건의 거래를 성사시켰지만 이번 달에는 단 1건에 그쳤다"고 말했다.

극심한 거래 부진 속에 아파트값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전용면적 77㎡(5층)는 지난달 9억9000만원에 거래된 것으로 신고됐다. 석 달 전인 4월 신고가(11억9000만원)에 비해 2억원이나 낮다. 작년 하반기 이후 오름세를 탔던 강북 집값도 약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노원구 중계동 건영3차 전용 85㎡가 5억6000만원에 신고돼 이전 달(5억8900만~6억2000만원)보다 2900만~6000만원 떨어졌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한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시장을 마비시키고 있다"며 "규제 완화의 시기와 폭을 구체적으로 밝혀 시장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건호/박종서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