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라면 박태환 같은 선수가 나오기 힘들었겠지. 아마. "

1948년생 '건국둥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지나온 60년을 돌아봤다. 어느 세대보다 하고픈 얘기가 많은 그들이다. 자리를 잡으면서 나온 첫 화제는 역시 올림픽,그중에서도 박태환 선수였다. 건국둥이에게 박태환이라는 이름은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개인의 특성과 장기를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환경. 그들은 그런 악조건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대담에는 신상훈 신한은행장과 오영교 동국대 총장,임종욱 대한전선 부회장,정태순 장금상선 회장 등 네 명의 동갑내기가 함께했다. 환갑을 맞은 초로의 신사들은 대담이 진행된 두 시간 동안 다시 소년이 되기도 하고 청년이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으로서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지난 12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건국둥이들의 방담을 소개한다.



"다들 가난했지만 정신적으론 그때가 더 풍요"

▲신상훈 행장=건국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과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리 건국둥이들은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태어나 격동의 현대사를 모두 겪어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떤 부분이 가장 아쉬우신지요.

▲오영교 총장=제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시기인 1963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공업입국을 주창하면서 전국에 5년제 공전(공업전문학교)을 6개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 아버지가 아들 진로를 놓고 공무원하시던 형님뻘 되는 친척에게 자문을 구하셨어요. 그 분이 대통령이 역점을 두는 곳이니 공전을 가는 게 어떠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대전공전 시험을 봤죠. 필기시험은 좋은 성적으로 붙었는데 신체검사에서 떨어진 거라. 알고 보니 색약 검사에서 문제가 생긴 거였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후기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어요. 요즘 같으면 시험 치기 전에 미리 다 알아보고 갔을 텐데.

▲임종욱 부회장=저도 중학교까지는 명문을 다녔어요. 그 당시 서울사대부중은 특차로 학생들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졸업 무렵 집안이 어려워져서 상업학교를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린상고 야간에 갔지. 그때는 좌절도 하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신 행장=요즘 세대들이 들으면 아마 아프리카 어느 나라 얘기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유년시절에 관한 질문을 하나 더 할까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성장기의 계기랄까 모티프 같은 사건이 있었을 텐데.

▲정태순 회장=어렸을 때 부황걸린 사람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하루는 어머니가 뒷집에 가보라고 하는 거예요. 일주일 동안 인기척이 없다고. 찾아 가보니 퉁퉁 부은 채로 사람들이 누워 있는 거예요. 굶고 있는 게 창피해서 바깥에 나오지 않은 거겠지. 죽도 가져다 주고 그랬는데 어린 마음에 무척 많이 놀랐어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잘못하면 나도 저렇게 굶어 죽는구나. 그런 두려움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로 이어진 것 같기도 해요.

▲신 행장=왜 교복도 선배들한테 얻어 입었잖아요. 그 큰 교복을 입고 학교까지 왕복 40리길을 걸어다녔어요.

▲정 회장=구호물자를 받은 적이 있는데 옷을 하나씩 나눠줬어요. 나는 장갑이나 하나 줬으면 했는데 난데없이 여자 스커트를 주는거라. 큰누나가 잘 입었지.(웃음)

▲오 총장=초등학교 때 학교가 분교였는데 건물이 달랑 하나 있었어요. 거기는 고학년들이 쓰고 나 같은 저학년들은 동네 헌 방앗간에 가마니를 깔고 겨울에 공부를 했어요. 겨울 지나면 학교 옆 야산에 있는 나무그늘 밑에다 각자 자기 자리를 큰 돌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공부할 장소만 있으면 최고겠다라고 늘 생각했어요.

▲임 부회장=배급받은 우유를 집에서 찌면 딱딱한 돌처럼 되는데 그걸 주머니에 넣고 먹다가 또 넣어 놓고 그랬는데. 주거 환경도 방 하나에 식구들이 다 같이 자는 건 예사였고. 하지만 샛강에 수영가고 메뚜기 잡고 그러면서 건강하게 지냈어요. 정신적으로는 지금 사람들보다 풍요롭지 않았나 싶어요.

▲신 행장=정신적으로는 풍요로웠다고 하셨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모자란 게 많던 시절이었죠. 이런 게 있었다면 지금 젊은이들보다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것이 있다면.


아픈 이 그냥 뽑던 시절 박태환 같은 선수 나오기 힘들었을 것


▲오 총장=국민학교 5,6학년 무렵 그때는 사생대회라고 했는데 특선을 하고 그랬어요. 학교에 그리고 붙이는 건 다 내 몫이었어요. 그런데 선친이 그림 갖고는 먹고 살 수 없다고 해서 그만뒀습니다. 지금 같으면 계속 했을 텐데.

▲신 행장=박태환도 그때 태어났다면 금메달 못 땄을 거예요. 아마.(웃음)

▲임 부회장=돌이켜보면 유년 시절에 특별히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빈곤했던 건 맞죠. 전기도 안 들어오고 화장실도 그렇고. 하지만 행복지수는 오히려 지금보다 높았을 거예요.

▲정 회장=교육과 의료의 기회가 박탈됐던 시기였죠. 중학교 가는 비율이 20%도 안 됐고 요즘 의료 수준이면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일찍 돌아가셨어요. 저도 지금 어금니가 없는데 어릴 때 뽑아버렸기 때문이에요. 이가 아프다고 하면 그냥 뽑아버리던 시절이었죠.

▲오 총장=군대에서 위생병을 하던 사람이 동네 사람들 치아를 모두 치료했죠. 한번은 이가 아파 그 사람을 찾아갔더니 다짜고짜 이마를 기둥에 밀어붙이더니 이를 빼 버리는 거예요. 아마 그때 사용한 기구가 공업용 펜치였을 거예요. 얼마나 놀랐던지.


땐 상사가 한잔하자면 아무도 안빠졌는데 요즘은…


▲신 행장=사회 초년생 시절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들려 주시죠.

▲임 부회장=그때는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야 했죠. 선배들도 무척 엄했고. 에피소드라…. 너무 허다해서 꼭 집어서 얘기하기 어렵네요. 매일 매일이 그랬으니까. (웃음)

▲오 총장=보고하려면 무조건 차트를 만들어야 했죠. 전지로 만든 큰 차트는 물론이고 윗사람에게 보고할 때는 이와 별도로 미니 차트와 병풍식 차트를 따로 준비했어요. 중요한 보고가 있을라치면 차트를 만들어주는 가게에 아예 살았어요. 위에서 글자 하나 바꾸라고 하면 전부 바꿀 수 없으니까 그 부분만 오려 낸 뒤 다른 종이를 뒤에다 붙였죠. 위에서는 왜 그리 요구사항이 많은지.

▲신 행장=맞아요. 그때는 복사기도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불평을 하진 않았어요.

▲오 총장=저녁 퇴근 무렵 윗사람이 어디 같이 가서 한잔 하자고 하면 아무도 안 빠졌어요.

▲정 회장=회식에 데리고 가주는 것만 해도 고마웠죠.(웃음)

▲신 행장=야근을 많이 해서 통행금지 때문에 조마조마했던 적도 많았죠.

▲오 총장=한번은 연말에 갑자기 보고서 작성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어쩔 수 없이 연말연시에 직원들을 집으로 불러서 이틀 밤을 꼬박 새워서 보고서를 만들었죠.

▲임 부회장=1974년에 대한전선에 입사했는데 그 당시 회사 사이즈가 재계 10위권에 속할 정도여서 일이 무척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무환경은 열악했죠. 계산기도 제대로 없어서 주판으로 모든 걸 다 했어요. 좀 지나니까 돌리면 '땡' 소리나는 계산기가 나오더구만. 아무튼 장부는 펜으로 일일이 다 써야 했고 결산서 만들려면 먹지 대고 하나하나 눌러서 썼어요. 야근할 때면 제일 졸병이 저녁 무렵 석유를 사오는 게 일이었지요. 겨울 밤에는 건물 난방을 끄니까 석유곤로를 피워 놓고 야근을 해야 했으니까요.

▲신 행장=선배들 숙직을 후배들이 대신해 주는 경우도 많고 그랬는데.

▲정 회장=우리는 중소 선사였기 때문에 대기업 하청을 많이 했는데 삼성 같은 경우 보통 밤 11시,12시까지 불이 안 꺼졌죠. 그 시간에 전화통화도 하고 그랬어요. 화물 싣는 작업장에 가보면 현대 직원들이 밤 12시까지 일하다 새벽 5시에 나오는 거예요. 우리 직원들은 당연히 그 사람들보다 더 늦게 들어가고 더 일찍 나왔죠.


"땀흘려 만든 富의 가치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신 행장=세월이 흐르면서 업무환경도 급변했습니다. 업무환경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셨는지요. 스트레스는 없으셨나요.

▲임 부회장=늘 하는 일이라…. 끊임없이 생산성을 추구하던 시절이라 바뀐 업무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항상 야근을 하는데 계산기가 새로 나오면 바로 적응해야 하지 않겠어요.

▲신 행장=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젊은 세대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뒤떨어지지 않아요. 젊은 사람들 쓰는 말부터 배우려고 노력하고. '시공초월'이라고 대화방을 만들어 쓰고 있는데 처음에는 '방가방가'라는 말도 못 알아들었죠. 채팅을 하다 보면 유머도 주고받고 좋은 책도 소개받고….

▲오 총장=늘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자는 게 제 철칙이에요. 또 하나의 좌우명은 무소유인데 나는 이 말을 '어떤 것을 이용해 나의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어요.

▲정 회장=성공한 분들이 다 그렇겠지만 젊었을 때부터 '나도 저렇게 돼야지'라고 생각해서 성공한 게 아니라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아니겠어요.

▲신 행장=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이 사라져서 그런 건지.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사회 선배로서 한마디 조언을 해 주신다면.

▲임 부회장=저는 처음에 경리부에 배치됐는데 우선 일을 잘 해야 한다는 목표 하나로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는 일에서 힘이 생기더군요. 신입사원 때부터 주어진 환경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가졌던 거죠.

▲정 회장=일을 하고자 하는 흔들리지 않는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이게 없으면 주위에서 도와줄 수가 없어요.

▲신 행장=저는 후배들에게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을 자주 해줍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죠.

▲오 총장=전 군대에서 3년 동안 정보보고서를 썼습니다. 매일 서너 건씩 갱지에 펜으로 잉크 찍어서 꼬박꼬박 보고서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글씨를 빨리 쓰고 멋있게 쓰는 능력이 생기더군요. 대학교 2학년 때 복학해서 4학년 때 고시에 합격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요약하고 정리해서 보고서 만드는 데는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죠. 군대시절 경험이 사회생활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된 셈이죠.

▲신 행장=글씨 빨리 써서 고시 합격한 셈이네요. (웃음)

▲임 부회장=우리가 얘기하는 걸 요즘 세대가 들으면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어요. 평생직장도 아니고 자기 몸값을 높이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건데 뭐 어떠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지 땀 흘리면서 해야 합니다.

▲정 회장=구닥다리 같은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상관하고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상관한테 잘 해줘야 합니다. 상관이야말로 자기를 키워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 총장=신입직원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는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 시작을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덧칠을 하면 일등 그림이 될 수 없습니다.

▲신 행장=우리때는 갈 수 있는 직장이 뻔했잖아요. 지금은 선택의 폭이 넓은데 개인적으로 보기에 미래 유망 직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 회장=바다하고 관계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앞으로 해양산업이 유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육지는 한정돼 있고 인구는 많아지니까 결국은 바다로 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에너지 관련 산업도 괜찮을 것 같고.

▲신 행장=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니까 헬스케어 관련 분야에서 기회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인재 양성이나 지식컨설팅 분야도 급부상할 것 같고요. 금융산업도 유망합니다. 금융자산관리 투자분석 자산컨설팅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죠.

▲오 총장=넓게 보면 삶의 질에 관련된 분야가 유망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관련되는 분야는 환경과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좋아하고 특성에 맞는 것이 가장 유망한 분야라는 것입니다.

▲임 부회장=사람들이 기피하는 쪽에서 오히려 수요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요즘은 엔지니어들도 전자쪽으로만 가려 하고 강전(强電·공업용 대규모 전력)쪽으로는 안 옵니다. 남들이 안 가는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정 회장=100% 공감하는 얘기입니다. 독자들이 좀 전에 임 부회장이 한 말만 읽어도 본전은 뽑겠는데요. (웃음)

▲신 행장=외국에서는 한국 경제의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 회장=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문(文)을 숭상해 왔잖아요. 그래서 교육열이 그 어느 나라보다 높았던 게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건국 초창기 우리나라에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지도자가 있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방향을 잡은 것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부회장=정신력이 아닐까요. 올림픽에서도 나타나듯이 '헝그리 정신'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봅니다. 살기 어려운 시절 적당한 동기 부여를 한 지도자들의 리더십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공무원들도 상당히 헌신적으로 일을 많이 했고요. 기업가들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창업 1세대의 도전정신은 지금의 한국 경제를 일군 토양입니다.

▲신 행장=누가 뭐래도 우리 민족의 잠재력이 세계 최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으싸,으싸!'하는 근면성과 열정이 위기가 생기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오 총장=리더십이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몇 년 전 필리핀 지도층과 식사를 하는데 그들이 "필리핀에 박정희 대통령 같은 사람만 있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잘 살고 있을텐데…"라는 말을 하더군요. 또 우리 국민의 강한 열정을 꼽고 싶습니다.

▲신 행장=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오 총장=일한 사람이 대우받고 열심히 한 사람이 대접받는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그 결과로 가진 사람,번 사람의 가치가 존중돼야 하고요. 열심히 벌어서 쓰는데 자꾸 손가락질 받으면 누가 성장동력을 만들겠습니까. 그러니까 기업들이 자꾸 밖으로 나가고 투자도 하지 않는 것 아니겠어요.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기업들을 비난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적대적인 노사관계도 큰 병폐고요. 부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고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국부로 축적되는 것 아닐까요.

▲임 부회장=기업하는 사람들은 계속 성장하려는 욕구가 충만합니다. 그러나 좌우갈등 등으로 사회가 불안하면 마음 놓고 투자할 수가 없어요.

▲신 행장=세계로 과감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로 철옹성이라고 했던 세계 유수 은행들이 치명적 손실을 입고 있는데 이럴 때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인재를 키우면 글로벌 플레이어로 클 수 있습니다. 박태환을 보세요. 우리가 어디 수영에서 금메달을 따리라고 꿈이나 꿨나요.

▲정 회장=개인도 정부도 사회도 남의 탓에 빠져 있으면 성장이 안 됩니다. 자기 분야를 개선하고 자기 분야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매진해야 합니다.

▲신 행장=건국 60년을 겪어 온 세대로서 앞으로 보고 싶은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입니까.

▲오 총장=기본과 원칙이 중시되는 사회입니다. 촛불집회를 할 때도 기본이 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정부도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어 주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국부를 키워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경제가 잘못 돌아가도록 방해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상식선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회,기본에서 일탈하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신 행장=한국의 성장모델은 저개발국가의 교과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대접을 받는 것도 잠깐입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고 계속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합니다. 미국이나 중국 등을 보면 이런 작업을 소리소문 없이 해내고 있습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정 회장=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문화와 질 높은 의료를 원합니다. 또 일자리도 많기를 바라고 국제사회에 공헌도 하고 그러기를 기대합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에 더 매진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신 행장=한 개인의 인생을 한 나라의 역사와 나란히 놓고 되짚어 보는 일은 의미가 있을 수도,다소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국둥이라는 조어가 시사하듯,이 자리에 있는 분들이 한국의 운명과 궤적을 함께 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경제 현장에서 흘린 우리의 땀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했다면 지나친 자화자찬일까요? 이제는 '산업의 역군'에서 '사회의 멘토'로 역할을 바꾸어야 겠지요. 어쩌면 우리 세대가 한번 더 대한민국을 위해 힘을 내야 하는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요즘 젊은 세대보다 더 활력 넘치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안재석/민지혜 기자 yagoo@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