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
아리프 아쉬츠 지음│김문호 옮김│일빛│352쪽│1만5000원



2000년 전부터 동서양의 교역 통로였던 실크로드.중국 시안에서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3만리(1만2000㎞)에 이르는 여정은 이름처럼 아름다운 비단길이 아니라 목숨을 건 죽음의 길이었다. 중간에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이름도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이라는 뜻이다.

비단과 도자기 향신료 등을 낙타 등에 싣고 사막의 모래바람과 숨이 컥컥 막히는 더위,살을 에는 추위와 싸우며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카라반(대상)의 행렬.그 길에는 장엄한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1996년 6월4일.터키 사진작가 아리프 아쉬츠가 어시스턴트 2명,카메라맨 1명과 함께 쌍봉낙타 10마리를 이끌고 고대의 방식 그대로 실크로드를 따라 걷는 모험에 나섰다. 몽골에서 시안까지 트럭으로 실어온 낙타들을 몰고갈 낙타몰이꾼 1명과 중국인 통역 1명이 동행했다.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은 장장 15개월에 걸친 이들의 여정을 사진과 함께 기록한 것.원정대는 중국의 시안에서 출발해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이란을 거쳐 터키까지 험난한 길을 날마다 걸었다. 계절이 다섯번 바뀌는 동안 수없이 많은 물집과 상처로 발바닥은 낙타발처럼 딱딱해졌지만 역사와 함께한다는 감흥 덕분에 엔도르핀이 무궁무진 솟아났다. 실크로드 곳곳에는 그 옛날 카라반의 유전자를 간직한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의 놀이와 문화도 면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을 방물장수인 줄 알고 몰려온 아낙네들과 죽었던 낙타몰이꾼 남편의 영혼이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여인도 만났다. 80년 전 샘물가에서 진통하던 여인을 도운 카라반의 우두머리 이름을 따 '보르게빅'이라고 이름을 지은 키르기스스탄의 촌로는 그 때의 카라반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이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여행의 동반자인 낙타가 네 마리나 도중에 죽은 이야기,낙타 오줌이 만병통치약이라며 오줌을 받으러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낙타의 털을 뽑고 다리 사이로 기어드는 여자들까지 '사건사고로 얼룩진'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신(新)실크로드의 장엄한 풍경과 황금빛으로 물드는 노을,이슬람 국가의 낯선 풍습과 해맑은 아이들의 눈동자 등이 140여컷의 컬러 사진에 실려 더욱 빛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위험했던 일과 공안의 체포 등 숱한 곤경을 헤쳐나가는 데에는 터키 대통령이 써준 친필 서한과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친서가 결정적인 힘이 돼주었다. 그것은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이 마르코 폴로에게 주었던 실버 스탬프처럼 위기 때마다 이들을 구원해준 '마법의 통행증'이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