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유쾌한 흥분' 속에 한 달여 전 '불쾌한 흥분'은 잊혀져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중학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넣기로 했던 것 말이다.

당시 정부는 주일대사를 소환하는 등 강력 대응했고,시민ㆍ사회단체들은 일본 규탄에 핏발을 세웠다. 그러나 일본은 거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이 '독도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선에서 사태가 수면 아래로 잠복되는 인상이다.

더 잊혀지기 전에 이 즈음에서 독도 사태를 되돌아 보자.일본의 이번 도발에선 결과적으로 우리가 진 게 분명하다. 일본은 원하던 걸 취했고,우린 희망하던 걸 얻기는커녕 뒤통수를 맞았다. 두번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복기(復棋)가 필요하다.

권철현 주일대사는 최근 일본 내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번 독도 사태를 '예방외교의 실패'라고 자인했다. 맞는 말이다. 일본 정부가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등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기키로 한 것은 2005년 예고됐던 것이다. 당시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국회 답변에서 "독도 문제를 교과서 학습지도요령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지난 3년간 우리 외교는 도대체 뭘 했느냐"는 게 정치인 출신 권 대사의 자탄이다.

한국 외교는 왜 뒷북만 치는 걸까. 외교관들이 무능해서일까,아니면 사명감이 부족해서일까.

여러 요인을 들 수 있지만 확실한 것 중 하나는 외교 인프라의 부실이다. 인력도 예산도 경쟁국과 비교해 허약하기 짝이 없다.

단적인 예가 주일대사관에 일본 의회 전담 외교관이 없다는 점이다. 중요 국가정책이 의회에서 발의돼 의회에서 최종 결정되는 의원내각제 국가의 외교공관에 의회 전담자가 한 명도 없다. 중국대사관엔 의회담당 외교관만 5명이다. 중국은 대사관 직원 외에도 국영 신화통신 특파원들까지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일본 의회의 속기록을 꼼꼼히 챙기고,주요 사항을 본국에 보고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린 외교관 수가 태부족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외교통상부 직원은 2138명.한국과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이 5500명,캐나다 네덜란드가 각각 3000명 수준인 것과 비교가 안 된다. 일본은 현재 5500명인 외무성 인력을 10년 내 7000명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예산도 한심하다. 지난해 외교부 예산은 1조960억원으로 정부 총예산 156조원의 0.7%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3%의 절반 정도다.

일만 터지면 인력과 예산 타령을 하는 공무원들을 대변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외교부가 지금의 인력과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제대로 일하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사람과 돈을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외교는 국력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독도 사태를 외교력 강화의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그게 더이상 '불쾌한 흥분'을 경험하지 않는 지름길이란 생각이다.

도쿄 차병석 특파원 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