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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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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규택 <삼주SMC 대표 tedhan7@gmail.com>

    얼마 전 이사를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앞집과는 이사간다는 인사는 했지만 막상 이사가는 날에는 앞집에 아무도 없어서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했다.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한동네에서 10년 이상 살았어도 아는 이웃이 별로 없다. 이사도 이삿짐센터에서 와서 해주니 옛날처럼 이웃의 도움도 필요없다.

    이삿짐을 실은 차가 동네어귀를 떠나는 모습을 보니 문득 어릴 적 이사하던 기억이 생각난다. 마당에서 팔이 저리도록 도배에 사용할 풀을 쑤시던 어머니의 모습.쉬는 날 휴식도 포기하고 이웃을 위해 같이 도배하고 막걸리를 나눠마시던 이웃집 아저씨들의 푸근한 모습.헤어짐이 아쉬워 동네어귀까지 따라 나와 점점 멀어지는 차를 향해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흔들던 친구들….이제는 추억 속에 아련한 그 시절의 모습이다.

    컴퓨터게임,인터넷은 없었지만 빌려온 만화책에 뻥튀기 한 봉지면 심심한 줄 몰랐으며,다닐 만한 학원도 없었고 과외공부도 흔치 않던 시절이라 방과 후 친구들과 어울려 골목길에서 노느라 정신 없었지만 시험 때가 되면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무릎이 저리도록 열심히 공부도 했다.

    즐길 만한 것이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어도 TV가 있는 집 마당에 온 동네사람이 모여 열심히 응원하던 김일 선수의 통쾌한 박치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상에 찌든 시름을 한번에 날려 보냈다. 춥고 배고프고 요즘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했던 시절이었지만 순수한 마음과 따뜻한 이웃,때묻지 않은 친구들,그리고 앞날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와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 및 설렘이 있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은 지 12년 만인 지난해 우리의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섰다. 과연 소득이 2배 높아졌다고 12년 전보다 2배 행복할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국가별 행복지수 비교에서 방글라데시와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이 수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행복은 소득과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소득이 2배로 늘어나는 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경쟁 속에서 공동체 내의 일체감이 무너지고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학원으로,엄마들은 부업전선으로 뛰다보니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얼굴 볼 시간도 없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도 함께 나누고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던 시절.저녁마다 온 가족이 모여앉아 얼굴 마주하고 오순도순 이야기하던 시절.동료끼리 도와주고 친구끼리 아껴주고 이웃 간 정이 넘치던 그 시절.행복했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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